두드림의 육하원칙

이창근 | 쌍용차 심리치유센터 ‘와락’ 기획팀장

“했다.” “그랬다.”

[이창근의 두드림]두드림의 육하원칙

어떤 책 한 쪽을 읽고 난 후 아들 주강이 기억에 남은 단어였다. 기억에 남는 말이 더 없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제서야 책 제목을 물어보니 <부러진 화살>이었다. 아무 책 한 쪽만 큰소리로 또박또박 읽은 후 다음날 기억에 남는 문장이나 글귀를 말해달라고 주강이에게 얼마 전 부탁했다. 주강이는 아빠 부탁을 들어주면서도 두꺼운 책은 부담이었는지 최대한 얇고 가벼운 책을 골라 한 쪽을 읽는다.

김명호 교수의 고단한 법정 투쟁기이자 사법부의 고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부러진 화살>. 영화로 더 유명해진 책 <부러진 화살>은 ‘했다’와 ‘그랬다’로 설명될 수 있다. 쌍용차 굴뚝에 올라 101일을 지내면서 쌍용차나 노동과 사회문제로 관심을 넓혀 해결책을 생각하며 몸에 밴 습관 중 하나는 ‘육하원칙’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영어 단어 머리글자를 따 ‘5W1H’라고도 한다.

습관이 무서운 이유는 몸에 밴 어떤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무서움이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유익과 유해로 나뉜다. 예를 들어 경찰 수사관의 직업적 습관인 ‘육하원칙’은 범죄 사실을 빠르게 밝혀내는 유익함이지만, 자신을 향한다면 시대 흐름과 역행하는 경찰에 대한 뭉뚱그려진 사회인식만큼 자괴감으로 다가와 유해하다. 사석에서 개인 심정을 토로하는 경찰관의 모습에서 수도 없이 느낀다.

쌍용차 정리해고는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사건 파일명으로 존재한다. 말하자면 살인사건인 셈인데 7년간 미해결 사건이다. 2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또 발생할 개연성을 내재한 사건이기도 하다. 육하원칙에 따라 수도 없이 설명하고 하소연했지만 여전히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육하원칙에서 빼먹거나 혹은 간과했던 순서는 없었나. 순서가 뒤바뀌거나 배열 순서에서 특정 하나를 너무 강조하진 않았는가. 그것이 이 사건의 배열과정에서 과잉된 볼륨감을 주진 않았는지. 차분하게 육하원칙에 따라 사건의 실체를 다시 두드려야 할 때이다.

파일명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 어떤 사건보다 육하원칙에 따라 설득력 있게 기록되고 서술됐다고 본다. 그런데 역으로 쌍용차 서사가 완벽에 가깝기 때문에 주체들의 노력과 애씀과는 다른 결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남용이라는 제도 자체의 결함으로 소급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자극했고 다른 사업장 문제는 왜 더 주목하지 않느냐는 타박 또한 나오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는 또 어떤가. 이보다 더 비극적인 서사가 존재할 수 있는가. 단언컨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릴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1년이 다 되도록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그리고 청와대 앞에서 끝까지 세월호 참사의 실체를 파헤쳐 진상규명을 해내겠다는 이들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아쉬운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쌍용차와 세월호에 올인하다시피 집중하는 과정에서 습관처럼 고통을 느끼고 있는가. 아니면 습관처럼 고통을 취급하고 있느냐다. 쌍용차와 세월호 참사의 대가는 명확하다. 제도와 틀로 찍어 누르는 압력이 있고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 또한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그들이 그 대가를 치르고 이후에 변화된 환경과 그들에게 미치는 누적된 황폐화에 대한 어떤 평가나 조사도 없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세월호 유가족의 ‘시행령 폐기’라는 아주 작은 요구는 고통과 죽음을 추정하지 않고 낱낱이 살피고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막아서는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 진영을 구분치 않고 비판받는 이유며 출렁이는 지지율의 원인이다. 쌍용차 또한 26명 죽음의 원인에 대해 아직까지 추정할 뿐이다.

그런데 다행인 건 쌍용차 노사가 지난 7차 실무교섭에서 26명 희생자 문제에 대해 ‘노사 공동조사’ 작업에 합의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어떤 합의보다 의미가 있다. 특히 그동안 26명 사망사건으로 뭉뚱그려 존재했던 각각의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찾겠다는 것이기에 진전된 변화다.

문제 해결은 두드림으로부터 시작된다. 투쟁이든 교섭이든 크게 상관이 없고 저항의 주체가 누구인가도 중요치 않다.

다만 두드림의 육하원칙에 따라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느냐가 중요하며,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혼선과 반목 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누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여기서 ‘누가’는 사람이 아닌 ‘구조’다. 여기서 한번 더 꺾어 그 구조의 압력을 ‘누가’ 집행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두드림의 육하원칙에서 첫 번째는 사람과 구조를 통합적이고 통시적으로 보고, 그 ‘누구’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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