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체르노빌의 목소리

윤순진 |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4월은 잔인한 달이라 말한다. 4·19라는 ‘미완의 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3·15 부정선거를 도화선으로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꽃다운 나이에 꽃잎처럼 스러져간 원혼들이 있었건만 오늘 우리는 그런 일을 있게 한 장본인을 국부라 칭송해 마땅하다는 궤변이 더 이상 궤변이 아니라 국정교과서에 역사적 사실로 버젓이 실릴까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다.

[녹색세상]세월호·체르노빌의 목소리

4월의 아픔은 언제쯤 끝이 날까? 그런데 그 이후로 4월에 아픔을, 4월에 더 무거운 기억을 더하는 일들이 있었다. 4월16일의 세월호 참사, 곧 다가올 4월26일의 체르노빌 참사가 바로 그 사건들이다. 28년의 시차를 두고 각각 한국과 구소련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그 두 사건은 시간의 차이와 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한 가지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바꿀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가치는 ‘안전과 생명’이라는 것이다. 이 둘은 또 다른 슬픈 공통점이 있다. 수많은 생명이 아무런 잘못 없이 희생되었건만 책임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그 죽음이 아프게 전하는 메시지가, 그 목소리가 아직도 공허하게 메아리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둘은 과거의 지나간 일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결코 잊혀져서는 안되는 일이기도 하다.

‘위험 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 교수에 따르면 심각한 재난은 ‘해방적 파국’으로 작용해서 많은 개인과 사회를 ‘탈바꿈’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안전과 생명에 더 많은 가치를 둔다면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은 상당히 변화될 것이다. 세계 모두가 함께 목격한 사건들이었지만 체르노빌 핵참사와 후쿠시마 핵참사는 여러 사회에 다른 결과를 낳았다.

이 사건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각 사회와 시민이 얼마나 공명했는지가 달랐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2002년 당시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연립정부가 원자력법을 개정해 원자로 수명을 평균 32년으로 해서 2021년까지 독일 내 원자로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했다. 체르노빌 핵참사가 결정적 계기였다. 그러나 2009년 총선을 통해 메르켈 총리의 기독교민주연합이 자유민주당과 연정을 수립한 이듬해인 2010년, 독일 정부는 원자로 수명을 평균 12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다시 후쿠시마 핵참사가 일어나면서 메르켈 총리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 노후 원자로 8기의 가동을 즉각 중단하고 남은 9기를 2022년까지 순차적으로 폐쇄하기로 했다. 물론 메르켈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라 ‘안전한 에너지 이용을 위한 17인 윤리위원회’의 두 달간에 걸친 논의와 조사, 의견수렴 결과를 전격 수용한 것이었다. 물리학자 출신으로서 원전의 안전한 이용을 믿었던 메르켈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후쿠시마가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에겐 안전이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가치다.”

지난 4·13 총선을 통해 제20대 국회의원이 새롭게 선출됐다. 20대 국회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국회이길, ‘안전과 생명’을 그 무엇보다 위에 두는 국회이길 원한다. 세월호는 침몰했지만 세월호의 진실은 침몰할 수 없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국회이길 원하며 원자력발전 확대정책을 놓고 논쟁하는 국회, 보다 많은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 안는 국회가 되길 원한다. 새로 선출된 국회의원 당선자들에게 20대 국회활동을 준비하면서 읽어볼 만한 책 한 권을 권하고 싶다.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체르노빌의 목소리>다. 10년 넘게 체르노빌 핵참사 피해자들이 겪은 참상과 아픔을 생생하게 취재한 후 그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낸 목소리 소설이자 역사적인 기록이다.

한국은 더 이상 세월호가 되어서는 안되며,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되어서도 안된다. 그 사건들은 해방적 파국으로 우리를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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