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퍼스트 대회’를 아십니까?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관계, 나이, 위치, 상대방의 동의 등 맥락을 지우고 발달장애인을 지칭할 때 흔히 쓰이는 ‘우리 친구들’ 말고 동료로서 ‘친구’. 발달장애여성과 함께하는 활동이 많아질수록 내게 드는 고민이다. 그러나 발달장애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현실, 나와의 차이를 눙치고 친구가 되기엔 서로가 직면해야 할 과제가 많다.

[NGO 발언대]‘피플퍼스트 대회’를 아십니까?

지난 10월27일 5회 전국발달장애인자조단체대회 한국피플퍼스트대회가 열렸다. 피플퍼스트는 발달장애인이 주체가 되어 활동하는 조직과 운동을 말한다. 1974년에 미국 오리건주 자기권리주장대회에서 한 발달장애인이 자신을 ‘mentally retarded(정신지체)’로 부르는 것에 문제제기 한다.

그의 “I wanna be known to people first(나는 우선 사람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라는 발언에서 PEOPLE FIRST(피플퍼스트)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한국은 2009년 한·일 피플퍼스트 교류대회를 열었고, 몇 년 전부터 피플퍼스트 운동이 확산되어 도전과 토론의 과정을 겪어가고 있다.

“장애인도 사람이다. 때리지 마라! 발달장애인에게도 일자리를 달라! 발달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이다! 말로만 시설을 폐쇄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라! 모든 사람들에게 평평한 길을 만들어 달라!” 이번 대회 슬로건이다.

피플퍼스트 대회에서 발달장애인들은 권리의 주체임을 선언하고 행사를 직접 준비하여 치른다. 공적 공간에서 밀려났던 사람들이 대회라는 큰 행사를 그들의 속도와 방식으로 만들어간다. 그러나 이 시간이 사회통합을 목표로 규범과 태도를 학습하는 자리라고 기대해선 곤란하다.

발달장애인으로서 자기다움을 존중받는 곳. 때론 갈등이 생겨 조율이 필요해 혼란스러워하고, 감정을 드러내거나 파악하기 어려운 메시지를 표현하기도 하는 실패의 경험을 보장하는 곳. 그렇게 공적 공간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지지와 갈등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경험을 쌓는 네트워크. 눈치보고, 허락받아야 했던 몸은 말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몸으로 변화한다. 비록 대회장 밖 사회의 변화는 더디지만 말이다.

단순한 삶은 없다. 하지만 발달장애라는 의학적 진단과 장애인복지법상 장애개념으로만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면, 발달장애인의 삶은 단순할 거란 편견이 생기기 쉽다. 발달장애인 중에서 지원, 조력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는 것은 맞지만, 도움을 받는 이로만 여긴다면 그들의 주체성과 욕구를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장애여성 학자 수전 웬델은 ‘한 사람이 혼자 많은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 도달하기 어려운 수행에 대한 기대치의 표준이 장애를 사회적으로 구성한다’고 했다.

그 표준이라는 기대치에 발달장애인만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고, 표준의 기대치로 압박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거 알아요.” 한 발달장애여성의 말이다. 정말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동의, 나이, 성별, 취향 여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우리 친구들’ 말고, 동료 시민으로서 발달장애인의 삶에 다가가고 관계맺기를 연습하는 것부터 사회구성원들이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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