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제도개편, 숙의자료가 중요하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현 중3 학생부터 적용되는 2022학년도 대입제도는 사실상 국가교육회의가 결정한다. 정확히는 국가교육회의 산하의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 산하의 공론화위원회 산하의 시민참여단이 결정한다.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방식에 대한 시시비비는 뒤로 미루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금은 시민참여단이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또는 최악의 결정만은 피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

[학교의 안과 밖]대입제도개편, 숙의자료가 중요하다

지금으로선 시민참여단에 제공하는 ‘숙의자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로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16일 “시민참여단이 대입제도에 대해 잘 모를 수 있어 숙의자료를 충분히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공론화위원회는 정말 중요한 숙의자료를 확보했을까.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어떤 자료를 말하는 건가?

첫째, 한국사와 영어에 대한 광범위하고 객관적인 조사자료다. 그동안 이들 과목에서는 학교의 수업·시험과 학생의 공부내용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한국사·영어에서는 이미 수능 절대평가제가 시행됐다. 한국사는 수능필수로 지정될 때부터 절대평가제였다. 영어는 작년부터 시행됐지만 학교의 수업·시험을 기준으로 보면 3년 예고제로 인해 이미 2015년부터 절대평가제가 시행됐다. 한국사·영어 수능 9등급 절대평가제는 수업·시험·공부내용에 어느 정도의 변화를 일으켰는가?

둘째,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에 대한 광범위하고 객관적인 조사자료다. 이들 과목에서는 학교의 수업·시험, 학생의 공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현 고1 학생들에게는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고 있다. 이전과 크게 다른 점은 통합사회와 통합과학 두 신설과목을 모든 학생이 배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능 개편안이 1년 연기되면서 생긴 우연한 결과로 인해 고1 학생들은 입시제도 개편안이 어떻게 결정되든 수능에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치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상 처음으로 수능의 영향이 완전히 배제되고 내신의 영향만을 받게 된 주요과목의 수업·시험과 학생의 공부내용에 나타난 변화를 알아볼 수 있게 됐다. 시행기간이 짧은 한계가 있지만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 정도의 숙의자료가 제공돼야 시민참여단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수능제도 개혁을 우선해야 하는지, 내신제도 개혁을 우선해야 하는지, 아니면 둘 다를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인지, 그 어떤 판단이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목소리 큰 소수가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를 토대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한데 이런 조사가 가능할까?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미 교육청-학교에는 잘 구축된 조사 시스템이 존재한다. 수천·수만 교사의 의견을 1주일이면 알아볼 수 있다. 학교폭력실태조사 시스템 등을 활용하면 수십만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도 한 달 이내에 알아볼 수 있다.

이러한 조사자료는 단순히 시민참여단을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진 대입제도를 둘러싼 사회갈등을 완화하는 데에도 꼭 필요하다. 예컨대 수능에 전 과목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면 그에 반대한 사람들이, 지금처럼 상대평가제를 유지하면 그에 반대한 사람들이 반발할 것이다. 내신제도에 절대평가제를 도입하거나 도입하지 않거나 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반대 입장의 사람들을 승복시킬 수 있을까. 최선의 조사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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