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의 입시, 학종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2015년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종로학원 주최로 열린 입시설명회를 찾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서성일 기자

2015년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종로학원 주최로 열린 입시설명회를 찾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서성일 기자

어떤 이들에게 학종은 비판의 대상을 넘어 분노의 대상이다. 금수저 전형, 깜깜이 전형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최악의 입시부담을 주는 전형이라 그런 것도 아닌 듯하다. 사람들의 학종에 대한 분노는 다분히 윤리적인 감정이다. 그들은 학종이 초래한 교육윤리의 타락에 분노하는 것이다.

[학교의 안과 밖]위선의 입시, 학종

방금 말한 교육윤리의 타락은 시험문제 유출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시험지를 훔치는 일은 명백한 범죄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예외적 현상이다. 사람들이 학종에 분노하는 것은 그보다 더 폭넓게 존재하는 비윤리적 행위들 때문이다. 학원이나 부모가 학생부에 기록될 스펙을 만들어주다시피 하는 일, 학원에서 작성한 것을 그대로 학생부에 기록해 주는 일, 학원에서 써준 자기소개서를 학생이 쓴 것처럼 위장하는 일, 학교가 성적우수자에게 스펙을 몰아주는 일…. 이런 것들 때문이다. 이것들은 결코 일부의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는 일이다. 얼마 전 만난 내 친구는 학종 컨설팅학원(그 친구의 말로는 스펙 학원)을 운영하는 후배로부터 들은 내용을 말해주며 이렇게 탄식했었다. “와, 그거 완전 사기더라.”

그런데 학종으로 인한 교육윤리의 타락이 앞서 말한 것에 국한된다면 학종에 분노하는 사람이 지금처럼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됐든 그것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하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대다수 사람들이 행하는 더 광범위한 비교육적 행위가 존재하는 걸까. 어느 학부모가 공개적으로 털어놓았던 이런 수준의 일이라면 그렇게 봐야 한다.

“원서 마감은 보름 앞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우리 부자는 매일 다큐멘터리 한 편씩을 봐야 했다. 그것도 사회성 짙은 문제작 위주였다. 아들이 어려서부터 다큐멘터리를 즐겨 봤고 그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처럼 자기소개서를 꾸미기 위해서였다. 15일 동안 본 다큐멘터리를 15년에 걸쳐 본 것처럼 위장해…”

이런 정도의 것이라면 우리 주위의 평범한 학부모, 교사, 사교육 종사자, 그리고 학생들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물론 이것들은 자그마한 일탈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윤리적 죄책감과 불쾌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일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학종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사람들이 분노한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윤리의식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자신의 부끄러운 경험을 용감하게 밝힌 학부모는 누구일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다. 앞서 인용한 글은 김의겸 대변인이 한겨레신문 기자일 때 학부모로서의 경험을 담아 쓴 칼럼 “난 이렇게 아들의 ‘스펙 조작’에 가담했다”의 일부다.

스펙을 쌓으려고 억지로 한 일을 고결한 동기에서 한 것처럼 꾸미고, 형식적으로 하고선 충실하게 한 것처럼 위장하고, 남의 힘을 빌려 놓고는 혼자 힘으로 한 것처럼 속이는 행위들은 이제 더 이상 이상한 행위가 아니다. 교육(공교육·사교육·가정교육)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낯익은 행위들이다. 학종의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에는 성인군자, 대학자, 슈퍼맨이라 할 만한 훌륭한 학생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학생부와 자소서의 세계에서만 그러할 뿐이다.

학종은 위선의 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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