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뒷담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박선화 한신대 교수

소주가 맥주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막걸리 걔 은근히 뒤끝 있더라.”

오래전 본 유머 글인데 제목이 뒷담화였다. 뒷담화란 말은 뭔가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만 모르고 남들은 아는 이야기란 대체로 소외와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욕을 한다는 신경증적 증세 역시 비슷한 불안감에서 온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사실 여부도 불확실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이런 음험한 방식의 소통을 즐기는 것일까. 뒷담화는 늘 불량한 인격들이 벌이는 악의의 한마당일까.

박선화 한신대 교수

박선화 한신대 교수

생각해 보면 뒷담화를 하지 않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다. 관계의 세계는 ‘나’와 ‘너’ 그리고 ‘3자’로 구성된다. 늘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유아나 나르시시스트 중 하나고, 늘 너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집착증을 의심해야 할 것이다. 인생 여정에서 접하는 무수한 만남에서 단수건 복수건 제3자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 사는 곳엔 칭찬이든, 험담이든, 감정이 제거된 뉴스든 반드시 타인에 관한 정보가 있고, 이러한 ‘소식이나 소문의 공유’는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유발 하라리 역시 저서 <사피엔스>에서 뒷담화와 인류의 인지혁명과의 관계를 기술한 적이 있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를 통해 사피엔스가 서로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키며 더 큰 사회를 만들어온 원동력이기도 하다’는 내용이다. 또한 인간의 언어가 발달한 이유 역시 이러한 관계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한다. 사자나 들소의 위치 이상으로 권력자의 내심과 관심 가는 암컷, 수컷의 잠자리 정보가 생존에 중요했다는 것이다.

사실 어떤 사회든 정치적 격변의 배경에도 반드시 뒷담이 존재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악의적 소문은 혁명에 일조했고, 유명한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은 FBI의 고위 관료가 워싱턴 포스트지의 기자에게 닉슨과 백악관의 비리를 전해주었기에 가능했다. 역사적 사실들도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해온 정사만으로는 실체를 알기 어렵다. 내밀한 동기와 숨겨진 비화들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기술한 야사가 더해져야 더욱 입체적인 그림으로 완성된다. ‘정사는 뼈고 야사는 살’이라고 하는 이유일 것이다.

결국 문제는 뒷담화 자체라기보다는 이야기의 질과 동기다. 뒤틀린 자의식과 질투심 같은 오염된 동기는 자신이 믿고 싶은 방향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인지편향을 일으킨다. 최근 들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뉴스들도 비슷한 현상이다. 하지만 흑심 어린 동기파악이 결코 간단치는 않다. 선정적이고 공격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지식 수준이 높을수록 은밀하고 지능적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아 청자와 화자의 지적 차이도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전달된 소문의 진위보다 듣는 이의 편견이나 트라우마가 믿음 여부를 가르는 경우도 많다. 늘 상기할 것은 사람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성향과 경험의 누적이 만든 가치 프레임도 다르기에, 평가나 판단 역시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평가와 판단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작동되는 생존 활동인지라 멈추려 해서 멈춰지지도 않고 잠시 멈출 수 있으나 완전히 멈추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잘 알지 못하는 타인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판단의 팩트를 살피는 것이다. 최대한 다수로부터, 가능한 한 오랜 시간에 걸쳐 느리게. 물론 악의로부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정도로.

각자의 무의식이 설계한 주관적 믿음으로 가득 찬 세계 속에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를 믿는 것도, 반대로 자신이 아는 모습만 진실이라 믿는 것도 모두 불완전한 사고임을 성찰하는 것이 조금 더 현명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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