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장에 대한 추억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4·7 보궐선거로 오세훈씨가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선거 중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탈시설장애인당’이라는 가짜 정당을 결성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중 하나는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서울시를 위한 11대 장애인정책 요구안’을 전달하고 정책협약을 맺는 일이었다. 여러 후보가 이에 응했지만, 거대 양당 후보와는 면담조차 할 수 없었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그러던 중에 오세훈 후보와 직접 대면할 기회가 생겼다. 선거 일주일 전 그가 장애계와 간담회를 하기 위해 여의도 이룸센터를 방문했는데, 전장연이 3월 중순부터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위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소도 바로 이룸센터 앞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언론사의 카메라를 의식했기 때문일까. 그는 농성장에 있던 장애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농성단 대표가 전달한 정책요구안을 받아든 후 사진 촬영까지 했다. 하지만 자리를 뜨면서 정책요구안이 담긴 봉투를 되돌려주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였다.

오세훈씨는 2006년 7월부터 2011년 8월까지 5년간 서울시장을 지냈다. 그가 시장으로 재직한 기간은 내가 전장연 정책실장으로 일한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한 몇 가지 추억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번 일처럼 그다지 좋은 추억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 추억들 중 하나. 2008년은 한국 사회에서 탈시설 운동의 원년이라 불릴 수 있는 해였다. 석암재단 베데스다요양원의 비리에 맞서 싸우던 시설 거주인들을 중심으로 ‘탈시설공투단’이 결성되어 서울시청 앞에서 50일간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그 성과 중 하나로 서울시가 관할하는 전체 장애인 거주시설을 대상으로 ‘탈시설 욕구’를 묻는 조사가 이루어졌고, 거주인 70% 이상이 지역사회로 나와 살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오 시장은 당시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하는 걸 막았고 면담 또한 거부했다.

오 후보와의 조우가 있었던 다음날,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장애인단체들과의 간담회 영상을 보았다. 거리에서 투쟁하는 단체들은 초청조차 되지 않은 자리였지만 인상 깊은 발언도 몇몇 있었다. “만약 오세훈 후보가 시장이 되시면, 반대만 안 해줬으면 좋겠다”는 장애인단체의 얘기가 특히 그랬다. 그가 무상급식 반대 뜻을 관철하려다 시장직에서 물러난 후 10년의 세월 동안, 한국 사회의 장애인운동은 탈시설 정책의 확장을 위해 끊임없는 투쟁을 전개해왔다. 그 투쟁의 힘으로 지난해 12월 국회에선 탈시설지원법이 발의됐고, 서울시는 지난 3월 말 탈시설 지원 조례를 연내 제정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오세훈 시장이 이번 선거에서 내건 장애인 공약은 전반적으로 너무 부실해서, 그가 현재 탈시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지니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과거의 추억에 비추어보면 많은 걸 기대할 상황은 아닌 듯하다. 지금까지 힘겹게 만들어놓은 탈시설 흐름에 역행은 하지 않기를, 1년 남짓 되는 이번 임기 동안에는 별다른 추억을 남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개인적인 희망사항처럼 썼지만, 자신의 삶을 걸고 투쟁해온 많은 이들의 심경을 담은 경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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