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얀마 사이 한국의 ‘가치’ 기준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지난 11일로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지 100일이 되었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지금까지 800명 가까운 시민이 사망하는 유혈탄압이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세계은행은 사실상 내전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미얀마의 국내총생산이 올해 -10%가 될 것으로 전망하는 등 미얀마 국민들의 생활은 쿠데타로 인해 파탄으로 치닫고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반면 지난 9일 미얀마 군부는 마치 중국이 자신들을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증명하듯, 중국이 주도하는 약 25억달러 규모의 미 린 자잉 LNG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를 포함해 총 28억달러(약 3조1200억원) 규모의 15개 사업을 승인했다. 실제로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미얀마 군부에 대한 비판이 증가하는 가운데 ‘내정간섭’ 반대를 이유로 러시아와 함께 미얀마 사태와 관련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막아왔다. 미얀마 정세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미·중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며 강대국들이 공조된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라고 국제사회의 비판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미·중관계에서 미얀마의 지정학적 가치는 물론이고,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 문제는 대만·홍콩·신장위구르자치구의 현안들과 맞물리며 자국의 주권·영토·통일과 직접 관련된 민감한 문제로 떠올랐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 문제는 물론이고 상황에 따라 공산당 리더십의 정통성 문제까지 흔들 수 있어 국내 정치적으로도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사안들이다.

미국도 ‘가치’가 분명한 정책적 목표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나날이 격화되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자유진영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리더십을 높이고,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는 데 효과적인 ‘전략적 수단’의 역할에 더 무게가 실리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민감한 ‘가치’의 현안에서 최근 한국의 행보는 우려스럽다. 한국은 그간 중국과 관련된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를 사실상 외면해왔다. 한·중 양자관계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다자무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19년 7월 열린 제41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22개국이 위구르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 문제를 제기할 때, 같은 해 10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에서 23개국이 위구르 인권 유린을 비판할 때, 2020년 6월 제44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27개국이 홍콩보안법의 인권 침해 가능성을 지적할 때 한국은 모두 참여하지 않았다.

반면 미얀마 문제는 매우 대조적이다. 한국 외교부는 차관 면담을 통해 지난 2월16일 딴신 주한미얀마대사에게, 3월5일과 4월2일에는 각각 주한 아세안 대사단과 미얀마 유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고 국민들의 민주주의 요구를 지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한국은 3월12일 미얀마에 대한 군용물자 수출 금지, 국방·치안 신규 협력 중단 등의 1차 대응 조치를 발표했다. 한국정부가 외국의 인권이나 인도적 상황을 이유로 사실상의 독자제재 조치를 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되었다. 나아가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필요하면 추가적인 제재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원인철 합참의장은 미국·일본 등 12개국의 합참의장이 미얀마 군부의 유혈진압을 규탄하는 성명에 동참했다.

‘가치’의 문제에서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가진 북한을 차치하더라도 한국이 중국과 미얀마를 대하는 모습에는 많은 차이가 나타난다. 물론 ‘가치’와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이익’ 사이의 고민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미얀마에는 사실상 독자제재까지 가하면서 중국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국제사회는 한국을 과연 어떠한 나라로 평가할 것인가?

또한 ‘가치’와 ‘이익’의 충돌에서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적 이익만을 고려하느라 ‘가치’를 중심으로 미국의 주도하에 자유진영국가들이 구체화해나가는 무역과 첨단기술 및 바이오 산업에 대한 새로운 국제규범과 표준 및 국가 간 산업생태계 조성 논의에서는 한발 뒤처져 있다. 따라서 향후 한국이 ‘가치’의 현안에서 ‘선택적 접근’ 기조를 유지한다면 정부는 중국과 미얀마에 대해 다른 접근과 대응을 실행했던 내부적 원칙과 근거를 언제든 투명히 공개할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은 분명한 원칙을 바탕으로 ‘가치’에 관한 다자외교의 확대를 통해 자유진영 내에서의 새로운 국제규범과 표준 및 산업생태계 논의에서 우리의 이익과 지분을 보호하고 조율하는 데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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