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에서 차별 없는 세상을 생각하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박래군의 인권과 삶]봉하마을에서 차별 없는 세상을 생각하다

자전거 국토종주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하자!” 깃발 두 개를 달고 달렸다. 5일 동안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려가는 힘든 여정이었다. 한강을 지나고, 남한강을 지나고, 새재 자전거길을 가면서는 5㎞의 경사가 사람 질리게 만드는 마의 ‘이화령 고개’도 비바람을 맞으며 기어코 넘었다. 문경부터 시작되는 낙동강 줄기를 따라 달리다 마지막 날인 5월23일에는 봉하마을에 들렀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마침 노무현 대통령의 12주기 기일이었다. 추도식이 열리는 중이라 그의 묘역도 사저도 돌아보지 못하고 먼 벌치에서 바라만 보았다. 그렇지만 그가 사법시험 합격 전까지 살았던 생가를 둘러보고 노무현 대통령이 손녀를 태우고 자전거를 타던 화포천 생태습지공원까지 이어지는 ‘대통령의 자전거길’도 달렸다.

그때 국토종주에 동행한 친구가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SKY 못 나왔다고 엄청 무시당했지.”

그랬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맞아, 그것도 학력 차별, 대통령도 차별받던 나라지. 그 차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이 만약 고졸이 아니라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 검사나 변호사를 하다가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랐다면 퇴임 뒤까지 이어지는 모욕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는 명문대 출신 권력자들의 공모에 의해 모욕을 당하다가 그 모욕을 끊는 방법으로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져 생을 비극적으로 마감했다.

차별은 사람을 차이를 이유로 구분하고 사람의 반열에서 제치는 행위를 종합적으로 말한다. 차별은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기까지 하다. 일제는 독립을 주창하는 조선인을 비국민으로 구분 짓고 차별하고, 배제했고 죽이기까지 했다. 해방 뒤에는 권력과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을 빨갱이로 규정하고 사회에서 배제시켰다. 일제의 비국민이 그대로 빨갱이로 이어져왔던 아픈 역사를 우리는 갖고 있다. 그 뒤에는 전라도 출신, 여성, 장애인,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정당화했다.

마침 5월에는 기억해야 할 슬픈 날들이 많다. 5·18 항쟁 때 희생되신 분들도 기억해야 하고, 30년 전 분신 정국 때 부패정권을 비판하며 죽어갔던 이들도 기억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일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또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도, 구의역 김군 사건도 모두 5월에 일어났다. 그 뒤 여성 차별과 혐오는 사라졌는가? 구의역 김군의 죽음은 김용균의 죽음으로, 올해 이선호의 죽음으로 이어졌는데, 왜 차별적인 노동구조는 이토록 견고하기만 한가? 어디 여성과 비정규직 노동자들뿐인가. 자신들이 당하는 차별을 어디에 호소도 못하고 사라지거나 숨어버리는 수많은 존재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실패한 대통령이다. 그렇지만 그는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가치를 남겼다. 그래서 노무현의 정신을 말하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사람 사는 세상은 무어냐고, 당신들의 눈에는 곳곳에 버티고 있는 차별의 벽이 보이지 않냐고.

5월24일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시작되었다. 이번 청원인은 25살의 채용 피해 여성이다. 그는 청원 이유서에 이렇게 썼다. “국민이 국회의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국민의 인식을 따라오지 ‘않는’ 것입니다. … 명백한 직무유기입니다.”

그의 말대로 14년째 직무유기를 하는 국회에 깨어 있는 시민들이 나서서 엄중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견고한 차별의 벽을 넘기 위한 첫걸음을 떼어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하자!”는 나의 자전거 국토종주는 700리를 흐르면서 수천의 내와 강의 물들을 받아들이면서 더 큰 강이 되다가 마침내 바다와 만나는 낙동강 하구에서 끝났다. 사람 사는 세상은 온갖 차이들을 수용하면서 서로 존중하는 낙동강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낙동강 700리 길에는 노란색 금계국 꽃이 강바람에 흔들리며 활짝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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