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교 출신이세요?”

오수경 자유기고가

진학하고 싶은 학과가 있어 별생각 없이 지방대 학생이 되었다. 훗날 내가 소위 ‘지잡대’ 출신으로 분류될지 그때는 몰랐다. 심지어 내가 지방에서 대학을 다닌 걸 모르는 지인이 면전에서 그 단어를 꺼내며 무시할 때도 있었다. 사람을 차별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굳이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내가 너그러워서가 아니다. 출신이 드러날까 봐 말을 못했을 뿐이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오수경 자유기고가

학력을 굳이 차별금지법 항목에 포함시켜야 하냐는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다. 학력은 ‘합리적 차별’ 요소라는 것이다. 합리적 차별이라니. 이 무슨 ‘거룩한 개소리’란 말인가! 다른 곳도 아닌 교육부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게 충격이다. 날로 심화하고 있는 학력 차별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곳이 교육부 아니던가. 심지어 학력·학벌주의 관행을 철폐하겠다고 나섰던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 아니던가. 아, 교육부 관계자들은 살면서 학력에 의한 차별을 당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구나. 좋겠다. 이게 단지 교육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다못해 캠핑장 예약이나 커피 전문점 이벤트 상품을 받을 때도 경쟁해야 하는 ‘경쟁의 민족’이며 시험이 가장 공정하다고 믿는 ‘능력주의’가 시대정신이 된 사회에서는 당연한 발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관련 기사마다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지 그랬어요~”라는 댓글들이 넘실거린다.

정말 학력이 단지 “성별이나 장애처럼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하는 것이기만 할까? 그렇다면 계급에 의한 학습 격차가 왜 사회적 문제가 되겠으며 ‘지잡대’라는 낙인이 왜 존재하겠는가. ‘지잡대’ 출신으로서 체감한 바를 말하자면, 한국 사회에서 학력은 사전적 의미로만 통용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인생에 새겨지는 낙인이다. 물론 최근에는 직원을 선발할 때 학력을 기재하지 않는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학력이 차별의 요소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나는 아직도 내 출신 학교를 밝히지 않는다. 학력으로 인한 편견과 차별적 공기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비겁한 조치다. SNS에 “출신 학교와 학번을 밝히지 않습니다”라고 굳이 밝히는 이들이 있지만 나는 ‘비자발적’으로 밝히지 않게 되었다. ‘학번’을 가진 나는 그나마 낫다. 누군가는 학번이 없기에 출신 학교와 학번을 ‘밝히지 않을’ 기회조차 없다. 한국 사회에서 학력은 신분이고 그 신분은 인맥이라는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한다. 그 인맥을 통해 소위 엘리트들이 계급을 대물림하고 동문들을 밀어주고 끌어준다. 학력이 누군가에게는 낙인이라면, 다른 한편에서는 기회와 자부심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학력을 이유로 조롱을 견뎌야 하고, 채용 불평등과 임금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종용당하고, 자신의 능력을 선용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우리 곁에는 “어느 학교 출신이세요?”라는 질문이 두려운 사람들이 있다. 진로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일은 내가 감당해야 할 일 맞다. 그러나 누구든 자신의 고유성 때문에 자율권을 상실하거나, 배제를 당한다면 명백한 차별이다. 학력을 그저 공정한 기회를 통한 정당한 노력의 결과로만 인식하면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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