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우파본색

양권모 편집인

예상보다 강경 보수본색을 드러낸, 문재인 정부를 향한 격문을 방불케 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출사표가 환기시킨 장면이 있다. 2019년 7월8일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윤석열 인사청문회에서 정치 성향이 도마에 올랐다. 야당이 ‘코드 인사’를 집중 문제 삼자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어에 나섰다. “사회의 점진적 변화를 중시하고, 주적은 북한이고, 국가보안법도 필요하고. 실질적으로 평가하면 보수 쪽에 가까운,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과는 오히려 먼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웃음으로 대신하려는 윤석열 후보자에게 백 의원은 한 번 더 묻는다. “본인의 성향이 민주당과 일치하거나 문 대통령과 일치하는 건 아니죠?” 윤석열의 대답은 간명했다. “그렇습니다.” 윤석열은 애초 민주당이나 문재인 정부와 친연성이 없는 보수다.

양권모 편집인

양권모 편집인

“자유라는 말을 여러 번 하는 것을 듣고 윤석열 이분이 이렇게 보수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승민 전 의원조차 놀랄 정도로 윤석열의 대선 출마선언문은 강한 보수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국민약탈, 독재, 부패완판, 망상, 역사의 죄 등 문재인 정부를 향한 핏빛 언어가 즐비한 출마선언문을 관통하는 것은 보수우파의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다. 출마선언문에서 23차례나 ‘자유’를 언급했다. 빈약하지만 경제, 공정, 청년, 미래 등을 말할 때도 자유가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 공격 지점에서는 어김없이 자유민주주의의 위기가 동원됐다. 한마디로 출사표를 요약하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다. “문재인 정권은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합니다.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입니다. 도저히 이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경제나 사회 정책의 입장으로 자유민주주의 철학을 제시한 게 아니다. 뉴라이트 사관에 뿌리를 둔, 박근혜 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 동기였던 그 ‘자유민주주의’를 대선 출마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윤석열은 정치로 진입하면서 제일 먼저 “진짜 보수가 맞느냐”는 의구심을 품은 보수 지지층에게 ‘자유’의 깃발을 펄럭이며 “나는 보수다”라고 선언한 셈이다. ‘공정’과 ‘정의’가 브랜드가 되어 중도·무당파와 2030세대의 지지를 확보한 ‘정치인 윤석열’의 근육이 휘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보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정권교체 지수가 50%를 넘나드는 정치 지형에서 집권을 위한 전략으로 보수색을 분칠했다기보다는 뼛속 깊은 우익의 DNA가 정치참여선언을 하면서 발현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터이다.

실제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 신봉은 뿌리가 깊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의 본질을 지키는 데 법 집행 역량을 더 집중시켜야 한다”(2019년 7월 검찰총장 취임사)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다”(2020년 8월 신임검사 신고식)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3월4일 검찰총장 사퇴의 변)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이다”(6월29일 정치참여선언문). 검찰총장 취임사부터 대선 출마선언까지 연결해보면 윤석열의 노선이 확연히 그려진다. 2018년 개헌 추진 당시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빼려고 했던 것에 윤석열은 꽂혀 있다. 검찰총장 재임 시절부터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정권을 그냥 놔둘 수 없다는 이념적 도그마에 빠져 있었던 셈이다. 그게 날것으로 표출된 게 대선 출마선언문이다.

국민의힘은 진보적 의제인 ‘기본소득’을 정강정책 1호로 삼고, ‘0선 36세 당대표’를 내세울 정도로 진화했다.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는 국민의힘보다 자유한국당, 아스팔트 우파에 가까운 강경 보수노선이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을 기화로 불붙은 ‘역사 논쟁’이 윤석열의 극우성을 드러냈다. ‘미 점령군’이라는 이 지사의 발언을 두고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 “잘못된 이념을 추종” 등 대대적인 이념공세·색깔론을 펼쳐든 윤석열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건국 논쟁’ 때 기승을 부린 극우의 역사관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번 ‘역사 논쟁’은 음울한 예고편이다. 문재인 정부의 안티 테제로 매우 이념적인 ‘자유민주주의’를 세우고 등판한 윤석열의 존재는 내년 대선이 진영 간의 ‘증오 정치’와 함께 ‘이념 전쟁’이 될 수도 있음을 가리킨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대립이 뾰족해질 경우, 국가 미래를 위한 경쟁은 설 땅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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