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여당 할 것 같은가”

양권모 편집인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0년 집권론’은 괜한 허장성세가 아니다. 뼈아픈 좌절을 거름삼아 절치부심 다져온 소신이다.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10년 만에 정권을 뺏긴 후 우리가 만든 정책과 노선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 정권을 뺏기면 절대 안 되겠구나 각오를 다졌다.” 그럴 만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전임 정부의 정책과 노선은 죄다 뒤집히고 초토화됐다. 오죽하면 임기 내내 펄럭거린 깃발이 ‘ABR’(Anything but Roh·노무현과 반대라면 무조건 괜찮다)이었다.

양권모 편집인

양권모 편집인

대체로 집권세력의 이념과 가치가 투영된 ‘개혁’ 정책은 반대 정부에서 1순위로 청산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설득과 광범위한 동의를 얻어 제도적으로 추진된 ‘개혁’이어야 반대 정부라도 되돌릴 수 없게 된다. 독선으로 밀어붙인 개혁은 정권교체가 이뤄졌을 때 오히려 반동의 도구로 이용되기 십상이다. 정권마다 의욕적으로 추진한 ‘교육개혁’이 한 번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이유다. 역사에서 반복되는 개혁의 역설이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은 어떠한가. 사실상 방치된 노동개혁, 재벌개혁, 교육개혁 등의 성과는 짚어볼 것도 없다. 최고의 업적으로 꼽는 검찰개혁과, 돌연 임기말 속도전으로 추진하고 있는 언론개혁이 대상이다.

검찰개혁의 알파와 오메가였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현재 실상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도입 취지는 찾을 길 없고 제대로 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무소불위의 검찰 견제를 위한 공수처의 대의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를 뚫기 위해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보니 공수처의 막강한 권한을 제어하고 중립성을 담보할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채 공수처법이 통과되었다. ‘야당 비토권’도 삭제되었다. 권력의 운용에 따라 ‘선한’ 공수처, ‘악한’ 공수처도 될 수 있는 판이다. 언제든 ‘우병우 공수처’가 등장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공수처가 ‘1호 사건’으로 권력형 범죄나 검찰 비위가 아니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특별채용 의혹을 삼았을 때 ‘멘붕’에 빠진 여당 의원들은 이미 개혁의 부메랑을 직감했을 터이다. 정치적 의도와 정략에 오염된 개혁이었기에 빚어진 현상이다. “개혁이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되어 있는 한 그것은 갑의 악을 을의 악으로 바꾸는 움직임에 지나지 않는다.”(G 마치니)

돌연 언론개혁의 전부인 양 등장한 언론중재법도 개혁의 역설을 떠올리게 한다. ‘닥치고 공수처’가 검찰개혁의 전부가 아니듯이, 언론중재법이 언론개혁의 유일한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언론의 책임 강화와 가짜뉴스·허위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 강화는 응당 필요하다. 그 명분을 앞세워 언론의 권력 감시와 비판을 옥죌 독소조항이 가득한 언론중재법을 통과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골간인 징벌적 손배제 자체가 정치·경제 권력의 ‘전략적 봉쇄소송’의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언론중재법의 위험성을 새삼 열거할 필요는 없겠다. 국민의힘과 정의당 등 야당은 물론 학계, 법조계, 언론단체, 시민단체 등 이념과 정파를 넘어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둥인 언론자유”와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개혁’을 내세운 특정 사안에 대해 이토록 광범위한 반대가 형성된 것을 본 적이 없다. 속전속결로 강행처리하려던 여당이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유예하고 추가 논의의 길을 튼 것도 이런 여론의 부담 때문일 터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언론중재법에 반대하는 야당을 향해 “평생 야당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실은 집권여당에 최적화된 언론개혁임을 드러낸 꼴이다. 그러니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같은 진짜 언론개혁 사안은 외면한 채 독소조항이 가득한 언론중재법에 목맬 터이다.

무엇보다 언론중재법의 가장 심각한 하자는 반민주적 정치권력에는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언론 통제,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 정부가 등장하든, 국민의힘 정부가 등장하든 ‘언론재갈법’으로 악용할 소지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천사가 되기도 하고, 괴물이 될 수도 있는 법은 ‘개혁’이라 이름할 수 없다. 여야의 ‘8인 협의체’가 반드시 정돈해야 할 지점이다. 독소조항 손보기를 주저하며 “평생 야당 할 생각이냐”는 민주당의 대표에게 되물어야 한다. “평생 여당 할 것 같은가.”(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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