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남아선호와 성차별이 만든 위험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가부장제의 상징인 호주제 폐지운동의 출발점에 심각한 ‘남녀 성비 불균형’ 현상이 있었다. 1997년 1월,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대한여한의사협회와 함께 ‘남녀 성비 불균형 문제점과 해결방안’ 토론회를 열어 성비 불균형의 원인으로 남아선호에 의한 반인권적 여아 낙태 문제를 제기했고 주범인 호주제 폐지를 역설했다. 여아 100명당 남아 수를 나타내는 출생 성비는 1990년(116.5명)부터 2002년(109.9명)까지 110명 수준이었다. 셋째의 경우 200명을 넘긴 때도 많았고 넷째의 경우 1993년엔 235.2명이나 됐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2030세대’가 한국 정치의 중요한 열쇳말로 등장했다. 특히 올 4월 재·보궐 선거에서 매우 이례적인 ‘성별 격차’ 투표 양상이 나타난 후 ‘20대 남성’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폭발했다. ‘남성 차별’이 심각하다 생각하고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력하게 내재화하고 있는 20대 남성은 공교롭게도 남아선호가 극에 달했던 1990~2000년 즈음에 태어난 세대다. 또래 여성보다 35만명쯤 더 많고, 이는 세대 인구의 10% 수준이다. 뿌리 깊은 성차별 결과로 선택받고 비대칭 조건에서 성장한 20대 남성의 인식은 독특하다.

지난 5월 KBS가 진행한 세대인식 집중조사 결과, 이들 중 40% 이상이 학력 수준이나 명문대 출신 등에 따른 임금격차가 ‘공정하다’고 했고 여성과 남성 사이의 임금격차도 ‘공정하다’고 답했다(52.7%). 특정 사상이나 신념 등을 이유로 채용에 제한을 두는 명백한 차별에도 ‘공정하다’고 동의하며, 환경보다 개발을 중시하고 성평등 정책에 반대하는 비율도 절반 가까이였다. 적지 않은 수가 ‘차별에 찬성’하고 보수 성향이 짙으며 공격성과 배타성을 보이는 20대 남성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명쾌하지는 않다. 가속화된 불평등과 불안은 청년 여성도 마찬가지다.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인식 격차는 극심한 남아선호와 성차별 역사의 연장선에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20대 남성’의 표심을 향한 포퓰리즘 정치가 아니다. 포퓰리즘 정치는 왜곡된 인식을 승인하고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강화할 뿐이다. 안산 양궁 선수에 대한 공격과 인권침해, 메달 반납이라는 비이성적 주장까지 난무했던 것은 정치와 사회의 그릇된 진단과 대응의 산물임을 자각하고 성찰해야 한다. 지난 8일, 포퓰리즘 정치가 만든 상징적 사건이 또 발생했다. 중앙대 확대운영위원회는 총학생회 산하 자치기구인 성평등위원회 폐지를 결정했다. “성평등위는 여성주의인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특정 성별만 생각하는 편향된 방향성을 갖고 운영하고 있다”는 반인권적 주장을 공적 기구가 인정한 것이다.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평등이고 정의다. ‘안티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차별주의자’의 언어다. ‘차별과 혐오’에 대한 공적 승인은 공동체의 안전을 해치는 매우 위험한 행위다. 안산 선수의 사례를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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