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공간으로서의 국회를 꿈꾼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이 보호하는 중요한 기본권이다. 여기에는 집회의 시간, 장소, 방식을 선택할 자유가 포함된다. 이 중 집회의 장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집회는 시민들이 모이고 말하는 자리이며, 따라서 그 말을 들어줄 대상이 있는 곳에서 이루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헌법재판소는 2003년 이렇게 판결하였다. 집회의 자유는 다른 법익의 보호를 위하여 정당화되지 않는 한, 집회 장소를 항의의 대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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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에서 국회의사당은 집회의 장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유는 제각각이라도 시민들의 항의 대상으로서 국회를 빼놓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십년간 국회는 집회가 가능한 공간이 아니었다. 1962년 제정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국회의사당 200m 이내의 집회를 절대적으로 금지했기 때문이다. 해당 규정은 1989년 100m로 범위가 축소되었지만 절대적 금지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집회의 금지는 집회의 자유를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다른 수단을 모두 소진한 후에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인 수단이다. 이 역시 2003년 헌법재판소의 판시 내용이다. 항의 대상으로부터 집회를 분리시키고 무조건 집회를 금지하는 것이 명백히 위헌이라는 판단이 이루어졌음에도 계속해서 이어진 국회 앞 집회금지는, 우리 사회에서 집회의 자유가 정말 기본권으로 보장되고 있는지를 질문하게 했다. 그리고 2018년 드디어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사당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1호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 후 2018년 11월 56년 만에 국회 앞에서 사전 신고된 집회가 개최되었다.

이렇게 하여 국회는 집회의 장소로서 시민들에게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국회는 뒤늦게 2020년 6월 법을 개정하여 몇가지 조건을 갖추면 국회 앞 집회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2020년 초부터 이어진 코로나19의 확산 앞에 다시 국회는 닫힌 공간이 되었다. 서울 영등포구가 2020년 3월 고시를 통해 국회 앞 대로변을 모두 절대 금지구역으로 설정한 것이다.

감염병 예방을 고려하더라도 집회의 전면 금지는 허가를 넘어서는 본질적인 내용의 침해라 할 수 있어 위헌 무효이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거리 두기 4단계 조치와 서울시 고시에 대해 위와 같이 판결했다. 이처럼 감염병을 이유로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것 역시 위헌이다. 그럼에도 국회 앞 집회를 금지하는 영등포구 고시는 11월1일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되기 전까지 1년7개월간 지속되었다. 위헌적 법률과 위헌적 고시가 만들어낸 이중의 제한에 갇혀 그렇게 시민들의 항의의 목소리는 국회에 전달되지 못하였다.

마침내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100명 미만의 집회가 허용됨에 따라, 개정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하에서 신고된 집회가 개최된다. 8일 시작되는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쟁취 농성’과 10일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촉구 시민대행진’이 바로 그것이다. 항의의 대상은 네 차례 발의된 차별금지·평등법과 10만명의 청원에도 아직 움직이지 않는 국회,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논의를 진전시키지 않는 정치권이다. 국회 앞에서 이루어지는 집회와 행진으로서 이보다 더 큰 의미를 찾기 어려운 자리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국회의 응답이다. 항의의 대상과 집회 장소를 분리하지 말라는 헌법재판소의 명령은 그 항의를 들어야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21년 연내에 차별금지·평등법을 제정하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국회가 하루빨리 응답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여 비로소 더 이상 국회가 위헌적 공권력행사에 의해 닫힌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유롭게 모이고 말하며, 이것이 전달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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