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신은 누구입니까?(Ⅱ)

김민아 논설실장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하 호칭 생략)이 정치 참여를 공식 선언하던 날(6월29일) 아침, 세 가지를 물었다. 첫째, 윤석열은 어떤 나라를 꿈꾸는가. 둘째, 윤석열은 누구를 대표하는가. 셋째, 윤석열은 이슈를 다룰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129일이 흐른 11월5일, 윤석열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정치 참여 선언에서 제1야당 대선 후보 선출까지 129일이 걸린 사례는 민주화 이후 처음일 것이다.

그동안 윤석열은 어떤 대답을 내놓았나.

김민아 논설실장

김민아 논설실장

첫째, 윤석열은 일관되게 ‘공정과 상식’의 나라를 말해왔다.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여 대한민국을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후보 확정 후 첫 인터뷰(연합뉴스)에서도 “공정과 상식의 기반에서 자율과 창의가 꽃피는 역동적인 나라”를 언급했다. 그렇다면 ‘어떤’ 공정인지 물어야 한다. 같은 인터뷰에서 윤석열은 “집권 초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래를 위해 국민 통합이 필요하고, 국민 통합에 필요하면 사면을 해야 하는 것”이라며 “(두 전직 대통령이) 댁에 돌아가실 때가 됐다”고 했다. 윤석열은 박근혜가 감옥에 가도록 길을 닦고, 이명박 수사를 진두지휘한 당사자다. “댁에 돌아가실 때”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사면론을 설파하다니 자기부정인가. 역대 대통령도 사면권을 행사할 때마다 국민 통합·사회 통합을 이유로 들었지만, 대부분 공정의 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만 낳았다.

둘째, 윤석열은 청년층을 대표하는 데 실패했다. 홍준표 의원의 경선 탈락 이후 젊은 당원들의 탈당이 이어지자 국민의힘 내에선 미묘한 긴장이 빚어지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8일 페이스북에서 “지난 주말 수도권 선거인단에서만 1800명이 넘는 탈당이 있었고, 탈당자 중 2030 비율은 75%가 넘는다”면서 “2030 탈당자가 40명 남짓이라는 허위 정보를 유통시키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했다. 앞서 윤석열 측 김재원 최고위원이 “전당대회 종료 이후 확인된 탈당자는 40명이 전부”라고 한 데 대해 반박한 것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5일 후보 선출 직전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석열의 지지율은 20대(18~29세) 3%, 30대 7%에 그쳤다. 8일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여론조사에선 20대(34.3%)·30대(35.5%) 지지율이 급상승했지만 이 같은 ‘컨벤션 효과’가 계속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지지 후보를 바꿀 수도 있다는 응답이 20대(34.9%), 학생(46.6%)에서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다(이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셋째, 윤석열의 ‘태도’는 그 자체가 리스크로 작용했다.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쉴 수 있어야 한다” “페미니즘이 남녀 간 건전한 교제도 막는다” “손발로 노동해서 되는 게 없다. 인도도 안 하고 아프리카나 하는 것” “집이 없어 청약통장을 만들어보지 못했다” 등이 이어졌다. 모두 전초전에 불과했다. 경선 막판 “전두환 대통령이 정치는 잘했다”는 망언으로 최대 위기를 맞더니 소셜미디어에 올린 ‘개 사과 사진’으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문제는 실언 자체보다, 실언을 대단한 명분이나 속뜻이 있는 양 ‘포장’해서 밀고 가는 데 있다. 첫발을 잘못 내디뎠으면 인정하고, 발을 빼고, 사과하면 된다. 그걸 하지 않고 고집을 부려 많은 이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겼다.

윤석열이 지난달 발표한 ‘청년 공약 겸 양성평등 공약’ 중에는 성폭력처벌법에 무고죄 조항을 신설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공정한 법 집행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내놓은 것이다. 특정 죄목을 ‘콕 집어’ 무고 조항을 신설하려면, 해당 범죄자 중 무고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유난히 많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2017~2018년 검찰이 처리한 성폭력 사건 피의자 가운데 무고죄로 기소된 비율은 0.78%에 불과했다. 이 통계는 2019년 대검찰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양성평등정책포럼에서 발표됐다. ‘검찰주의자’ 윤석열이 공약을 만들며 검찰 통계조차 외면한 셈이다. ‘안티 페미(니즘)’ 세력에 노골적으로 구애했지만 청년층 지지율은 오르지 않았다.

정치 초년생 윤석열은 지금 ‘표가 고프다’. 그러나 표 계산은 오늘 다르고 내일 또 달라진다. 표만 좇아간다고 표가 오지는 않는다. 법률가답게 논리와 근거를 갖고, 정치지도자답게 명분과 가치를 품고 주권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민주화 이후 자잘한 표 계산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대통령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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