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밈은 더 잘 확산하는가

장대익
[장대익의 에볼루션]왜 어떤 밈은 더 잘 확산하는가

이번 핼러윈(10월31일)은 <오징어 게임>이 접수했다. 이것은 글로벌 현상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진행요원의 붉은옷과 가면이 불티나게 팔렸고, 뉴욕 한복판에서 미국인들이 딱지를 치게 되었으며, 파리의 일부 시민들은 달고나 게임을 위해 6시간이나 줄을 서기도 했다. 심지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술래 인형이 세계 곳곳에 설치되기 시작했다.

[장대익의 에볼루션]왜 어떤 밈은 더 잘 확산하는가

유튜브에서는 이른바 ‘오징어 게임 밈’이라는 것이 크게 확산 중이다. 대개 ‘밈(meme)’이란 인터넷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각종 공유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퍼지는 2차 창작물 또는 패러디물을 뜻한다. 온라인에서 인기를 끄는 짧은 영상, 사진, 그림, 텍스트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극중 오일남 할아버지의 명대사, “그럼 자네가 날 속이고 내 구슬 가져간 건 말이 되고? 가져… 자네 꺼야… 우린 깐부잖아”는 다양한 버전으로 변형되어 계속 확산하고 있다. 밈의 세계에서 현재 최적자는 <오징어 게임>이다. 왜 우리는 이런 밈을 애써 만들고 변형하고 퍼 나르는 것일까? 대체 밈이란 무엇일까?

저녁 무렵 슬그머니 풀잎 정상을 향하는 개미들이 있다. 그들은 새벽까지 풀잎을 꽉 깨물고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뭔가 그 개미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아니다. 왜냐하면 그 개미는 새벽녘에 풀을 뜯기 시작한 소나 양에게 먹히고 말기 때문이다. 개미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납득될 수 없는 자살 행위다. 비밀은 ‘창형흡충’이라는 기생충에게 있다. 이 기생충의 ‘꿈’은 파라다이스인 양의 위장에 도달하는 것이다. 거기가 번식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그 꿈을 이룰 수가 없으니 개미의 뇌를 감염시켜 양에게 쉽게 잡아먹히게끔 개미를 조종하는 전략을 진화시킨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뚜렷한 구별점 한 가지는
우리만이 밈 세계에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

이 무서운 이야기는 곤충을 넘어 포유동물까지 이어진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심하게 용감해진다. 대개 고양이 오줌 냄새를 맡은 쥐는 도망을 가지만 이 기생충은 그 공포 회로를 끊어 놓는다. 톡소포자충은 고양이의 위장에 가서 맘껏 번식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의 관점으로 동물의 행동을 이해하고자 했던 진화생물학자 도킨스는 같은 책의 11장에서 인간의 행동을 조종하는 무언가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그것은 새로운 복제자, 즉 밈에 관한 이야기였다(그러니 밈 개념의 효시는 도킨스다). 그는 밈을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로 정의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복제되고 전달되는 “어떤 선율, 아이디어, 캐치프레이즈, 패션, 주전자 만드는 방법, 문 만드는 기술” 등이 밈의 사례라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밈도 유전자처럼 수명, 산출력, 그리고 높은 복제충실도를 갖춘 복제자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어떤 밈이 다른 밈들에 비해 더 잘 퍼질까? 어떤 문화적 아이템이나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빨리 확산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이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유용할 것이다.

싸이 춤·백주부 레시피 쉬워 인기

문화적 밈만이 아니라
정치의 계절답게
지금 이념의 밈이 꿈틀

2012년 여름에 처음 공개된 이후 불과 두 달 만에 15억뷰를 기록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우선, 이 뮤직비디오는 누가 봐도 너무 웃겼다. 일렉트로닉 사운드도 만국 공통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공유 플랫폼들이 크게 확장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분석에는 뭔가 빠져 있다. 웃기고 흥겹다는 이유로 마우스를 수억번씩이나 누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밈의 관점에서 보면 ‘강남스타일’의 춤동작에 주목하게 된다. 이 춤은 K팝의 여느 아이돌그룹의 현란하고 세련된 춤에 비하면 보잘것없다. 하지만 몇 번만 봐도 누구나 금방 ‘말춤’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단지 쉬운 춤이라 성공했다는 뜻이 아니다. 쉬운 것으로 따지자면 ‘막춤’만 한 것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은 규칙이 없기 때문에 따라 하기 가장 힘든 춤이다. 싸이의 춤은 누구나 따라하기 쉬운, 규칙이 있는 춤이었다. 말타기는 세상 어디에나 있지 않은가? 그동안 수많은 요리 프로그램의 현란한 레시피보다 ‘백주부(백종원)’의 레시피가 인기를 끌고 널리 퍼졌던 이유도 동일하다. 밈은 우리의 모방에 의해 전달되는 무엇이다. 유튜브가 세상을 바꾼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선천적 모방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해준 ‘밈 발전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징어 게임>이 밈의 세계를 석권할 수 있었던 것도 극중에 등장하는 게임들의 단순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등장하는 여섯 개의 게임은 기존의 데스게임물에 비해 훨씬 단순하여 따라 하기 쉬우며 패러디를 만들기도 어렵지 않다. 전 세계 모두가 쉽게 모방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확산력이 높은 밈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밈의 내용이 인간의 근본 동기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게끔 해야 한다. <오징어 게임>은 인간의 근본 동기 중에서 가장 직접적인 생존 본능에 대해 말한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목숨을 담보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개인들의 생존 본능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 감정이입이 쉽다. 지극히 한국적 풍경과 정서를 담은 로컬 영화 <기생충>이 전 세계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비결과도 유사하다. 봉준호 감독의 말대로, “우리 모두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하나의 제국에서 살고” 있으며, 이 두 작품에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한 것도 모두 이 제국의 문제를 기발한 방식으로 다수가 공감할 수 있게끔 잘 풀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둘 간의 차이는 <오징어 게임>이 훨씬 더 다양한 밈들을 양산할 수 있는 콘텐츠라는 점이다. ‘기생충 밈’은 기껏해야 포스터 패러디 정도였다. 이런 맥락에서 <오징어 게임>이 양산할 수 있는 변이들은 ‘무슨 무슨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패러디 양산 라인이 대부분이었던 강남스타일 콘텐츠에 비해서도 훨씬 더 폭넓다. 생물학에서는 이것을 진화력(evolvability)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동물의 세계에서 진화한 ‘체절’처럼 한번 생겨나면 그 이후에 여러 변이들이 따라 나오기 쉬운 생물의 변이 양산 체계를 뜻한다. 생명의 세계에서 체절이 한번 생겨난 이후부터 얼마나 많은 다양한 동물들이 가능해졌을까를 상상해 보라(넓게 보면 우리도 체절을 가진 동물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무슨 무슨 게임’으로도 얼마든지 확장되어 회자될 수 있는 밈의 샘물과도 같다.

오징어 게임은 ‘밈의 샘물’과 같아

따라하기 쉽고
공감 이끌어내는 밈이
널리 퍼질 것이다
성공적 밈 만들려면
강남스타일, 오징어게임
그리고 BTS에 배워야

방탄소년단(BTS)은 어떤가? BTS의 글로벌한 성공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밈의 구조보다는 내용에 더 큰 빚을 진 것 같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단지 재밌거나 따라 하기 쉬워서가 아니다(BTS의 곡과 춤은 따라 하기도 쉽지 않다). BTS를 지탱해주는 글로벌 팬덤은 그들의 퍼포먼스와 일상이 팬들이 원하는 것들에 완벽히 부합하기 때문에 형성된 자연스러운(그러나 기적에 가까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의 어떤 밴드도 BTS만큼 팬들의 근본 동기들(가령 소속감, 연애 동기, 양육 동기)을 다양하게 자극하고 깊이 만족시켜 주는 밴드는 없는 것 같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한 가지는 우리만이 밈의 세계에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밈을 만들고 그 밈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 문화적 밈만도 아니다. 정치의 계절에 이념의 밈들이 벌써부터 꿈틀거리고 있다. 이들 중 어떤 것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쉽게 회자될 것이고 어떤 것들은 금세 묻힐 것이다. 따라 하기 쉽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밈은 널리 퍼질 것이다. 성공적 밈을 만들고자 한다면 ‘강남스타일’, <오징어 게임>, BTS에 배워야 한다.
장대익

진화학자이며 과학철학자. 인간 본성과 기술의 진화를 연결시키는 연구와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과학과 인문의 경계를 오가며 인간, 기술, 사회의 진화를 이야기해왔다. 현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인지과학회 회장을 지냈다. 작년부터 서울대학교 초학제 교육AI연구센터 소장으로 있으며 에듀테크 벤처기업 트랜스버스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다윈의 식탁> <다윈의 정원> <울트라 소셜>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종의 기원> <통섭>(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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