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비즈니스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장대익
[장대익의 에볼루션]플랫폼 비즈니스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플랫폼 비즈니스는 기업인의 꿈이다. 호텔 한 채 없는 에어비앤비는 힐튼호텔 체인보다 시가 총액이 높다. 우버는 전 세계 모든 운송 회사를 넘어 GM 같은 자동차회사보다 더 큰 기업이 되었다. 단 한 대의 자동차 없이도 말이다. 불과 15년 전만 해도 전 세계 시가 총액 10위권에 드는 플랫폼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 단 한 곳뿐이었지만, 그사이에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테슬라 등이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왔고, 현재는 이들의 제품과 서비스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장대익의 에볼루션]플랫폼 비즈니스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대체 플랫폼이란 무엇인가? 플랫폼은 갖가지 동기를 지닌 온갖 주체들이 다양한 행위를 통해 저마다 보상을 받아가는 장이다. 가령, 백화점에는 여러 점포들이 입점료를 내고 자신의 가게를 오픈한다. 입점 가게들은 백화점의 인프라를 이용하여 자신의 브랜드를 높일 수도 있고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여 더 많은 매출과 이익을 낼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도 백화점 내 여러 매장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쇼핑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백화점은 공급자(점포)와 소비자(고객) 사이의 활발한 거래를 촉진하는 중계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플랫폼을 설계하기만 하면 이런 중계가 자동적으로 잘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백화점 주인이 이 중계 작업을 위해 시간, 노동, 돈을 너무 많이 써야 한다면 공급자의 이용료와 소비자 가격은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중계를 위한 비용을 너무 쓰지 않으면 백화점의 인프라 품질이 낮아져서 공급자나 소비자가 모두 백화점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현실의 아날로그 세계에서 돌아가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사례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어떨까? 디지털 플랫폼 비즈니스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아마존이나 배달의민족처럼 공급자의 제품을 소비자에게 연결해주는 제품거래형 플랫폼이 가장 친숙하다. 에듀테크 기업 유데미처럼 학습자와 교수자를 매칭해주는 서비스거래형 플랫폼도 있다. 한편 유튜브, 페이스북, 카카오 등은 사용자들이 콘텐츠와 정보를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주로 광고나 구독 서비스이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에어비앤비나 우버 같은 서비스는 자산공유형 플랫폼이다.

이런 디지털 플랫폼 비즈니스는 무엇이 다를까? 전통적인 신발 회사를 생각해보자. 회사의 목표는 더 좋은 신발을 더 낮은 원가로 생산하고 유통하고 판매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그런 제품들 중에서 자신의 구입 목적에 맞는 것을 사면 된다. 이런 회사는 생산에서 소비로 이어지는 단면 구조를 가진 파이프라인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제조회사가 이런 유형에 속한다.

플랫폼 기업, 네트워크 효과 활용

생계형 온라인 게임의 급부상이 디스토피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 역사에서 고객에게도 회사 이익을 분배하는 구조가 처음으로 탄생했다

그런데 그 신발 회사가 다음과 같은 비즈니스를 기획했다고 해보자. ‘운동화를 잘 만들어 파는 데에 그치지 말고, 운동화에 센서를 달아 이용자의 활동 데이터를 모아서 새로운 서비스 기회를 만들자.’ 실제로 나이키가 이런 기획을 했다. 그들은 운동화에 센서를 달아 이용자의 운동 거리, 시간, 속도 알림 기능뿐만 아니라 음악 추천 서비스 기능까지 담긴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만들어 큰 호응을 얻었다. 나이키는 제품에서 소비자로 이어지는 일직선 모델을 넘어, 이용자의 데이터를 또 다른 비즈니스에 환류시킬 수 있는 다면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사실, 애플은 파이프라인 기업에서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여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기업이다. 애플은 20년 전만 해도 매킨토시와 아이팟 등의 단말기를 만들던 제조사였다. 물론 그 당시에 가장 혁신적 제조사였다고 할 수 있지만 파이프라인 기업일 뿐이었다. 하지만 2007년 아이폰 기기 속에 iOS, 아이튠즈, 앱스토어 생태계를 창조함으로써 가장 큰 이익을 내는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은 태생부터 플랫폼 기업이었다. 이들 중 검색엔진으로 출발한 구글은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통해서는 애플 앱스토어와 경쟁하는 새로운 앱생태계(플레이스토어)를 창조했으며, 영상 공유 서비스인 유튜브를 통해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콘텐츠 공유 플랫폼을 운영해왔다.

이 플랫폼 기업들의 공통점은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는 점이다. 네트워크 효과란 새롭게 유입된 이용자들이 기존의 다른 이용자들에게 더 가치 있는 제품, 서비스, 경험을 만들어주는 비즈니스 증폭 메커니즘을 말한다. 전 국민 소통채널이 된 카카오톡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카카오톡은 이용자 확대를 위한 무료이용 정책을 처음부터 시행했는데, 이것이 경쟁 서비스에 비해 유입자를 늘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카카오톡의 무료 메신저를 사용해본 사람들은 친구들에게도 카카오톡 가입을 권유했고, 가입을 꺼렸던 사람들조차도 이용자 급증으로 인해 결국 회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카카오톡의 성공이 기능의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이용자의 초기 유입으로 인한 네트워크 효과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플랫폼이 성숙기에 접어들면 네트워크 효과는 플랫폼의 서비스가 더욱 고도화되는 데 기여한다. 가령, 카카오내비 이용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데이터의 증가로 인해 경로 추천 알고리즘은 좀 더 정교하게 작동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플랫폼의 독점적 지위가 탄생하고 공고해지는 대목이다. 이쯤 되면 이용자들은 지배적 플랫폼을 떠나기 힘들어진다. 이제 카카오내비 없이 낯선 곳을 여행하기는 힘들고, 유튜브 없이 학습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 기업은 꿈을 이뤘고 이용자도 이득을 보지만 뭔가 빠진 느낌이다.

영원한 건 없다, ‘플랫폼’도 그렇다

플랫폼 기업의 탈중앙화 시도들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구글의 변경된 결제 정책은 개발사와 이용자의 결제방식
선택권을 동시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진일보했다.

플랫폼 기업 모형이나 주식회사 구조에도 유통기한이 있을 것이다.
그 대안으로 다양한 개념들이 제시되지만 그 중심에
상생, 분산이라는 키워드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이 찜찜함은 플랫폼 기업들의 또 다른 공통점과 관련이 깊다. 그것은 플랫폼 기업이 여전히 중앙화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들의 플랫폼 생태계는 엄밀히 말해서 그 기업의 주주와 직원들만의 성취가 아니다. 플랫폼은 참여자들의 시간, 노력, 돈이 투여되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다. 그들은 단지 플랫폼에 물려 있는 다양한 공급자나 소비자가 아니라 플랫폼의 기여자들이다. 가령, 쿠팡이나 배달의민족에게 배달기사들의 노동 자체는 대체불가능하다. 배달이 일어나지 않는 서비스는 배달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의 플랫폼 구조에서는 이런 참여자들에게까지 합당한 보상이 돌아가지 못한다.

최근 ‘엑시인피니티’라는 온라인 게임이 동남아의 노동시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블록체인 기반의 이 게임에 이용자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을 투자하여 게임을 잘 하면 ‘SLP’라는 코인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을 실세계에서 현금화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모든 게임이 이기기 위해 돈을 쓰는 방식이었다면,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놀랍게 성장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게임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게임(P2E)’이다.

이런 생계형 온라인 게임의 급부상이 디스토피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밝은 측면이 있다. 거기서는 이용자를 게임 생태계의 기여자로 대접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게임에 활발히 활동하는 이용자들이 늘어나면 게임의 가치가 올라가고 그로 인해 이용자들은 자신이 게임 생태계에 기여한 만큼 현금화 가능한 코인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즉, 인류의 기업 역사에서 주주가 아닌 고객에게도 회사의 이익을 분배하는 구조가 처음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의 품질이 낮다고(모바일폰 초창기의 앵그리버드 게임도 비슷하지 않았는가?),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이나 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시비를 걸 일이 아니다. 그동안 그 어떤 플랫폼도 고객의 기여를 수치화하여 보상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기존 플랫폼 기업의 다양한 탈중앙화 시도들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앱생태계의 상생을 진지하게 고민해온 구글코리아의 최근 행보가 그 사례다. 지난해부터 입법부와 산업계를 뜨겁게 달궈온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지난 8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구글은 최근 자사의 결제 정책에 대대적인 변화를 발표했다. 앱마켓 사업자의 특정 결제방식 강제 금지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에 따라 앱 내에서 제3자 결제시스템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 변경된 정책의 주요 내용이다. 구글의 변경된 결제 정책은 인앱결제뿐만 아니라 외부결제 방식도 허용해 개발사와 이용자의 결제방식 선택권을 동시에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진일보한 앱생태계 상생 노력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 무려 1억4000만년 동안 지구를 점령했던 공룡도 6500만년 전쯤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기존의 플랫폼 기업 모형이나 주식회사 구조에도 유통기한이 있을 것이다. 최근에 그 대안으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ESG 경영, 프로토콜 경제 같은 다양한 개념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그 중심에 상생, 분산, 공존, 지속이라는 키워드가 자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장대익

진화학자이며 과학철학자. 인간 본성과 기술의 진화를 연결시키는 연구와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과학과 인문의 경계를 오가며 인간, 기술, 사회의 진화를 이야기해왔다. 현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인지과학회 회장을 지냈다. 작년부터 서울대학교 초학제 교육AI연구센터 소장으로 있으며 에듀테크 벤처기업 트랜스버스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다윈의 식탁> <다윈의 정원> <울트라 소셜>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종의 기원> <통섭>(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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