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고문과 고문시설의 이면에는
혐오와 그를 옹호한 언론 있음을
한 방송의 이면 추적을 보고 알아

보호외국인의 고문 실상을 덮어
실상은 스스로 발가벗었다

지난 9월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끔찍한 고문이 자행되었다는 폭로가 있었다. 그로부터 40여일이 지난 오늘까지 고문피해자는 고문장소에 갇혀 있다. 얼마 전 법무부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화성외국인보호소 보호외국인 가혹행위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 “인권침해행위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새우꺾기’라고 하는 보호방식도, 박스테이프나 케이블타이 등의 보호장비 사용도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보호외국인에 대한 보호의 남용이 있었음을 공식 확인한 것이다. 발표문의 표현들이 이상한 것은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쓴 탓이다. 외국인 강제구금시설에서 고문이 자행되었다고 해야 하는데 외국인보호소에서 보호외국인에 대한 보호의 남용이 있었다고 말하는 식이다. 새우꺾기에 동원된 엄연한 고문도구들에 대해 보호장비 운운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나로서는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다. 법무부가 인권침해를 확인한 마당이니 곧바로 구제 조치가 취해질 줄 알았다. 고문피해자를 고문장소에 계속 가두어두는 것은 또 다른 고문이기 때문이다. 난민신청자를 강제 구금한 것, 지시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문을 가한 것, ‘인권침해상황’이 확인되었는데도 계속 가두어두는 것.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를 말해주는 충격적인 보도를 접했다. YTN의 <시청자브리핑 시시콜콜>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제목이 ‘외국인 인권침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였다. 이 보도는 제목과 달리 외국인 인권침해가 무엇인지를 노골적으로 다 보여주었다. 진행자는 이번 사건을 전한 기사들에 대해 “뭔가 석연치 않다는 합리적 의심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화성보호소에서 일어난 가혹 행위 장면과 인권침해 사실에 대한 법무부의 확인 내용을 내보낸 뒤 그는 이렇게 논평을 시작했다. “첫 화면만 봐서는 명백한 인권침해입니다.”

얼마나 고약한 발언인가. ‘합리적 의심’이라는 받침대를 놓을 때부터 수상하더니 ‘첫 화면만 봐서는’이라는 지렛대까지 밀어넣고 있다. 법무부조차 인정한 ‘명백한 인권침해’를 뒤집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해당 외국인의 소위 난동 장면들을 보여준 뒤 그는 시청자들의 반응이라며 혐오발언들을 줄줄이 읊는다. “저런 것들에게도 인권이란 게 필요할까.” “범죄자 인권 논하지 마라. 러시아나 미국처럼 해줘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첫 화면만 봐서는 인권침해이지만 알고 보면 아니라는 건가. 자신이 소개하는 시청자들의 끔찍한 혐오발언들이 합리적 의심에서 도출된 당연한 반응이라는 건가.

마무리 발언은 더욱 황당하다. “뉴스가 주목을 받지만 이조차도 진실이 아닌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대로 믿지는 말라는 시청자의 조언을 명심하고 그 이면을 계속 추적하겠습니다.” 놀라서 벌어진 입을 끝까지 다물 수가 없다. 정작 법무부가 편집한 영상만 보고 진실을 아는 것처럼 떠들어대는 것은 누구인가. 심지어 해당 영상을 편집한 법무부조차 인정한 인권침해를 “첫 화면만 봐서는”이라고 은근슬쩍 뒤집으려는 것은 누구인가. 뉴스가 “진실이 아닌 경우가 적지 않”다는 말을 이 뉴스에 덧붙임으로써 고문에 대한 주장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이면을 계속 추적하겠습니다.” 정말이지 그랬어야 했다. 온갖 혐오표현을 쏟아낸 댓글을 읽어주는 시간에 고문피해자를 만나보았다면 이번 사태의 ‘이면’을 더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사자를 직접 접촉하는 것이 어려웠다면, 그곳에 갇혀 있다가 나온 사람들을 만나기만 했어도 뭔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사무실 컴퓨터 앞을 떠나는 것조차 어려웠다면 “똑같은 경험이 제게도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외국인들의 영상이라도 찾아보았으면 달랐을 것이다.

‘왜 고문이 일어났을까. 역시 난동을 부렸네.’ 이런 게 뉴스의 이면 추적인가. 난동이란 게 고문을 정당화할 수도 없지만, 난동을 부렸다고 해도 최소한 한 번의 질문은 더 던졌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왜 난동을 부렸을까’라고. 겨우 여기까지 나가는 것도 꺼리는 언론이 그곳에서 울부짖고 벽에 머리를 들이받고 단식하는 사람들의 이면을 안다고?

결국에 이번 보도를 통해 어떤 것의 이면이 드러나기는 했다. 고문의 이면, 고문시설의 이면에는 이것을 가능케 하는 혐오가 있고, 이것을 당연한 반응인 양 읽어주는 언론이 있다는 것 말이다. 이면을 추적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발가벗었을 뿐이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