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한 마리 날아와
눈 위에 앉는다
보이지 않는 먹이를 찾겠다고
눈 위에 찍어놓은
소소소수수수
발자국 여럿
금세 녹아 사라질
발자국만 남기고
새는 날아간다
이 아침
나의 할 일은
떠난 새의
발자국을 붙드는 일이다
이용진(1966~)
등단 26년 만에 낸 첫 시집이다. 시집 맨 앞에 수록한 시 ‘관상’에서 “새 한 마리 물가에 날아와 제 낯을 비춰본다”며 “평생 날아도 다 날지 못할 허공은 그대로인데// 아직 할 일이 남”아 다행이라 했다. 시 ‘과제’는 맨 뒤에 실려 있다. 한때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시인으로 활동했으나 오래 침묵할 수밖에 없었음을 드러낸 의도적 배치다. 흘러간 세월보다 시인으로 살 날이 더 많음을, ‘물가’와 ‘눈 위’에 날아와 앉은 “새 한 마리”를 통해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당연히 한 마리 새는 시인 자신이다. 물가의 새가 시인으로서의 정체성 확인이라면, 눈 위의 새는 먹고살기 위해 그동안 시를 멀리했다는 자기변명이다. “보이지 않는 먹이를 찾겠다고”, 가족을 부양하느라 시를 못 썼다는 궁색이다. 나만이 아닌 “여럿”도 그랬다는 자기 위안이다. “소소소수수수”는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형태적으로 ‘ㅅ’은 새 발자국을, ‘ㅗ’와 ‘ㅜ’는 지상과 허공을 뜻한다. 녹아도 사라지지 않는 “소수”의 족적을 남기겠다는 아침의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