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시인
[詩想과 세상]일출

싱싱한 새벽하늘을 데리고 의사가 분만실로 들어간다

팽팽한 대기

팽팽한 지평선

차디찬 적막이 흐르고 적막이 흐르고

눈 덮인 들판 끝으로

먹물처럼 퍼지는 여인의 외마디 비명

놀란 새가 푸드덕 허공에 희디흰 칼금을 긋는다

하늘의 회음부가 예리하게 절개되고

아기 울음 터진다

사방으로 빛이 터진다

눈 뜨는 돌

눈 뜨는 대지샘물이 걷기 시작한다

함기석(1966~ )

탄생은 ‘없는 상태’에서 새로 생겨나는 것이지만, 일출은 ‘있는 상태’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해돋이’라 하지만 실상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의 자전에 의한 자연현상이다. 일출은 주객이 전도된 말인 셈이다. 시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출을 아기의 탄생에 비유한 이 시도 마찬가지다. 동트기 직전의 밝은 듯 어둑함은 산모의 진통으로, 분만실에 들어가는 산모는 “싱싱한 새벽하늘”로 표현된다.

새 생명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분만실에 “적막이 흐”른다. 조바심으로 입술이 마른다. “눈 덮인 들판 끝”에서 번지는 먹물처럼 산모의 비명이 들린다. 허공에 “칼금을 긋”듯 날아가는 새와 “예리하게 절개”되는 회음부와 겹친다. 드디어 태양이 떠오른다. 일출은 장엄하고, 탄생은 경건하다. 팽팽한 대기와 지평선은 눈 뜨는 돌과 대지로 변모하고, 갓 태어난 아이는 샘물로 치환된다. 발원지를 떠난 물은 계곡과 시내, 강을 지나 바다에 이르는 긴 여정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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