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분열인가, 대포용인가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의 거리두기]대분열인가, 대포용인가

암울하였던 한 해가 지나가고 희망찬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답답하고 침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해를 맞는 마음이 여전히 무겁고 암울하다.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예방접종과 방역패스, 그리고 반복되는 접촉 제한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팬데믹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는 홍수와 산불은 기후변화 문제의 긴박함을 알리고 있다. 지난해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는 목표와 전략이 나라마다 너무 다르다는 사실만 겉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서방 세계의 최대 강국인 미국은 조 바이든이 집권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분열되어 있고, 미국 제국과 중국 제국의 대립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우리는 새해의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새로운 희망을 얘기해야 할 대선을 앞두고 있지만, 어디에서도 희망의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서로 대립하는 양당의 대선 후보 중 누구도 우리가 협력하면 어떤 삶이 실현될 수 있는지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이 없는데, 정책이 있을 수 없다. 우리 국민이 정당과 대선 후보의 정책을 꼼꼼히 비교하고 따지는 대신 후보의 인상에 좌우된다고 착각한 것일까? 현재의 대선 정국은 그야말로 욕하면서도 계속 보게 만드는 막장 드라마 같다. 적대, 비방, 혐오처럼 정치 문화의 가장 안 좋은 것들만 다 갖다 붙인 최악의 완전체를 보여준다. 상대당 후보를 ‘공적인 경쟁자’로 대우하지 않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제거해야 할 ‘사적인 적’으로 취급하는 선거 전쟁에서 긍정적인 비전과 정책이 보일 리 없다. 상대방의 흠과 약점만 파고드는 네거티브 전쟁은 최악을 피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태를 초래한다.

현재가 암울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의 역사는 사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언제나 희망의 길을 찾아왔다. 우리 사회는 꾸준히 발전해왔다. 코로나 전염병 탓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전쟁과 재난 같은 부정적 경향을 찾아내려 한다. 그러나 통계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세계은행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960년에는 158달러에 불과했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2017년 3만1617달러로 3만달러 시대로 진입하였다. 코로나 전염병으로 약간의 침체를 겪고 있긴 하지만 2021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5200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미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가진 선진국이다.

우리의 경제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작은 발전들이 모여 사회의 발전 경로를 구성한다. 우리 사회의 성장과 발전은 경제 데이터뿐만 아니라 국민의 복지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970년 62.3세에서 2000년 76.0세로 늘었고, 2010년 80.2세에서 2020년 83.5세로 50년 만에 21.2년 늘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0~2070년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한국인의 2070년 기대수명은 91.2세(남자 89.5세, 여자 92.8세)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최근 한국의 문화는 ‘K’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지옥>과 같은 영화와 드라마는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높이 평가받고 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선진국이다. 선진국을 따라잡으려고 애썼던 베이비부머와는 달리 요즘 청년세대는 한국의 경제와 산업, 그리고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다.

대선 후보만 모르는 ‘대분열’ 문제

그런데 우리 사회는 유독 정치 분야에서만은 여전히 후진적이다. 우리가 자력으로 민주화를 이룩하였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민주주의 문화가 성숙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에 깊이 실망하고 좌절한다.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살려야 하는 2022년 대선이 국민에게 절망감을 안겨주는 까닭은 무엇일까? 시민들이 장기적으로 더 부유해지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데도 시대정신은 더욱 암울해지는 것은 왜일까? 이유는 간단해 보인다. 앞으로도 경제는 성장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분명히 증대할 것이지만, 성장의 혜택이 모든 국민에게 고루고루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국가는 전반적으로 더 부유해졌지만 그만큼 더 불평등하고 불안정해졌다.

우리 시대의 핵심적 문제는 ‘대분열’이다. 거대한 산맥이 같은 기원의 물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흐르도록 만드는 분수계를 형성하듯, 대분열은 경제성장이 사회 통합보다는 극단적인 불평등으로 사회를 양극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사회의 소수는 자본주의 발전의 혜택을 받아 번영을 누리는 반면에 나머지 대다수는 의미 없는 생계 노동으로 내몰리는 대분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경제사 연구에서 ‘대분기’(Great Divergence)는 통상 동서양의 발전 경로가 달라지고 그로 인해 생활 수준의 격차가 벌어지게 된 분기점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러한 대분기가 같은 사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대분열을 시대정신으로 봐도 무방하다.

대선 후보를 비롯한 우리 정치인들은 대분열의 원인을 파악하기는커녕 인지조차 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청년세대’, ‘세대 갈등’, ‘젠더 갈등’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득표에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선거 공학적인 관점에서 갈라치기를 서슴지 않는다. 청년세대의 고민을 담은 정책은 없고, ‘이대남’과 ‘이대녀’로 갈라치는 선거전략은 사회분열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사회의 대분열이다. 교육을 많이 받고 숙련 기술을 가진 지식 노동자의 소득이 증가하는 동안 낮은 기술을 가진 단순 노동자는 고통을 받고 있다. 세계화와 기술 혁신의 최대 수혜자는 항상 상위 20%였다.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을 받는 나머지 80%는 일자리가 불안정해짐으로써 점점 더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대포용에 기반 새 모델 제시해야

경제성장 시대의 사회적 합의는 나눌 수 있는 케이크를 키우면 장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일시적 고통과 불평등은 참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설령 사회적 불평등이 존재하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의미 있는 노동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암묵적인 사회적 계약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기술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일자리가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들 위험에 처해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이 우리의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청년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더라도 대기업의 일자리는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전체 고용의 약 88%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기술 혁신의 압박을 받는 대기업 총수들에게 고용 창출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 문제를 은폐하는 이미지 정치일 뿐이다.

우리는 대분열을 극복할 새로운 사회 계약이 필요하다. 중산층 붕괴, 빈부 격차, 사회적 불평등으로 나타나는 사회 대분열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21세기 기술의 혁신적 발전과 여성의 역할 변화는 새로운 사회 계약을 요청하는 두 가지 주요 원인이다. 21세기의 지식기반사회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더 많이 대학에 진학한다. 2021년도 일반계고 대학 진학률을 보면 여학생은 81.6%인데 남학생은 76.8%로 약 5%포인트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도 여성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여전히 남성 노동자의 약 70%에 불과하다. 분명한 것은 교육기회의 균등으로 여성이 노동 시장에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인공지능, 자동화, 로봇과 같은 기술의 혁신은 점점 더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함으로써 의미 있는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기술 혁신의 혜택을 받는 지식 노동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단순하고 반복적인 노동만 하는 서비스 노동자는 더욱 가난해져 간다.

정치는 바로 이러한 대분열에 답해야 한다. 우리의 오래된 경제 모델이 압박을 받고 있다면, 정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어떤 것이든 새로운 모델은 ‘대포용’(Great Inclusion)에 기반해야 한다. 대포용은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계층과 지역과 인종과 관계없이 인정받고 삶의 기회를 보장받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사회적 경청’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대분열인가, 대포용인가? 2022년 우리는 국민의 목소리를 잘 듣는 민주적 지도자를 선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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