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전환기, 일자리는 국가 책임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재작년 12월, 노후 석탄발전소인 보령화력 1·2호기가 폐쇄되면서 에너지 전환은 우리에게도 당면한 현실이 되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산업재편 과정에서 석탄 화력발전 관련 1만4000명과 내연기관 자동차산업 관련 88만6000명의 노동자들이 고용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 전체의 최근 공식 실업인구 100만명과 비교해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 노동자들 상당수에게는 일터 상실이라는 예정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할 땐 국제사회의 압력에 내몰려 허둥대더니, 체감할 만한 고용 대책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절박함 앞에서는 느긋해 보인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의 결정에서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최근 5개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하는 기후대선운동본부는 대선에서 기후의제가 실종된 현실을 개탄하며 기후대선 토론회를 제안했다. 기실 주요 정당의 대선공약을 살펴보면 후보 넷 중 둘은 노동전환을 위한 대책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투표일이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인데 그렇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다. 그런데 그 의미는 점점 오리무중이 되어간다. 그것을 원전 확대의 기회쯤으로 여기는 경우마저 등장했으니 말이다. 실은, 본래 급진적인 사회운동에서 유래한 정의로운 전환 개념이 국제적으로 수용되어온 과정 자체가 그 개념이 변용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지금은 체제 전환을 지향하는 이들도, 사회적 대화와 관리형 개혁을 강조하는 이들도, 심지어는 신자유주의적인 녹색성장을 주장하는 이들도 서로 다른 의미로 각자 정의로운 전환을 말한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의 ‘공정전환’은 근본적인 구조개혁과는 거리가 멀기에 나름 색깔이 분명한 것 같다.

정부의 탄소중립 추진전략은 신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용자가 신산업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것을 적극 지원한다. 반면에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과 관련해서는 실직을 기정사실화한 후에 전직을 알선하는 사후관리에 그친다. 각자 취업역량만 키우면 새로 만들어질 일자리에 얼마든지 취업할 수 있다는 장밋빛 미래를 그려준다. 하지만 기름칠만 수십 년 해온 노동자가 어느 날 갑자기 인공지능을 운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고용 단절의 고통은 오롯이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몫이다. 그렇다고 직무전환을 위한 교육훈련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진 것도 아니다. 올해는 1만명 대상 장기유급휴가훈련 사업과 2만5000명 대상 노동부 직무전환교육 사업에 2000억원이 배정된 정도다. 더욱이 사업 수행기관인 ‘인적개발위원회’는 재계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기구로 알려져 있다. 생계 기반마저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과연 이런 공정전환은 공정하기는 한 걸까.

한국경제는 2010년대 이후 제조업 과잉축적에, 최근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전면화된 디지털 및 에너지 전환이 겹치면서 향후 구조조정과 대규모 탈탄소 산업전환이 예견되는 복합적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재생에너지 중심의 발전부문 재구성과 탄소집약형 산업에서의 기술 변화 과정에서 일자리의 대규모 재편이 수반될 것이 예상된다. 일자리의 양과 질, 고용관계 특성이 모두 크게 변할 것이다. 노동이 부문 간에 이동하고 재배치되는 과정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기 쉽다. 한국경제의 대전환기를 열어갈 새 정부는 이와 같은 일자리 위험을 국가적으로 관리하고 조절하는 시대적 과제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전환과 구조조정에 수반되는 비용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나눌 것인가이다. 한국 독점자본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고탄소 생산체제에서 여태 가장 큰 이득을 누려왔다. 그러나 그에 따르는 부정적 외부효과는 공동체와 생태환경에 전가시켜왔다. 눈앞에 닥친 산업전환에서도 그들은 정부 지원에 편승해 신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새로운 이윤 기회를 확보할 것이다. 이번에도 또 과거 생산체제의 수혜자들은 비용을 분담하지 않고 노동자들과 고용취약계층만 희생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반복될지 모른다. 과거 구조조정 사례처럼, 다시 사회적 합의와 조율 없이 시장만능주의에 근거해 일방적인 고용 조정이 추진될지 모른다.

더는 안 된다고 이제 우리가 말하자. 전환기 노동의 희생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오늘 민주노조운동은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노동의 대안으로 ‘일자리 국가책임’을 제기하고 있다. 일자리 국가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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