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혐오, 이젠 바로잡아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대법원도 ‘동성애는 부도덕하다’고 확인했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헌법과 법률은 결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최근 서울시가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법인설립을 불허하면서 성소수자 인권보장이 헌법에 반한다는 이야기를 했으나, 이 역시 얼토당토않은 주장일 뿐이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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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바로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에 대한 2008년 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해당 판결은 병사의 성기를 때리고 양 젖꼭지를 중대장이 비튼 군형법 추행죄로 기소된 사건이다. 명백한 강제추행 사건이었음에도 대법원은 무죄판결을 내렸다. 군형법 추행죄에서 말하는 추행은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비정상적 성적 만족 행위인데, 위 중대장은 공개된 장소에서 했으므로 그러한 비정상적 행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동성애 성행위 등 비정상적 성적 만족 행위, 대법원의 판결문에 박힌 이 문구는 계속해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선동을 하는 근거로 쓰였다. 법률에 대한 해석권한을 지닌 최고법원이 만들어낸 혐오가 군대 내 성소수자들에게 낙인을 씌운 것을 넘어 사회 전반의 혐오를 확대·재생산한 것이다. 이러한 혐오가 바로잡힌 것은 14년이 지난 2022년에서였다. 지난 4월21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군형법 추행죄로 기소된 두 군인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리며 “동성 간의 성행위가 그 자체만으로 ‘추행’이 된다고 본 종래의 해석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졌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은 동성애도 자연스러운 성적지향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도 있는 등 시대가 변화했음을 지적하였다. 그렇기에 동성 간 성행위를 객관적으로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성적 도덕관념에 반한다고 하는 것은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동안 반복되어 온 혐오의 논리를 일소한 것이다.

이렇게 14년 만에 바로잡힌 판결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여전히 과제를 남겼다. 판결의 쟁점이 된 사건이 병영 밖에서 일어난 것이기에 대법원 판결의 다수의견은 군형법 추행죄가 사적 영역에서의 합의된 성관계에까지는 적용되지 않는다고만 하며 법률 전체의 위헌성까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판결의 소수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동성 간 성관계까지 처벌하는 것은 형벌의 최후수단성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위헌이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군형법 추행죄 자체가 동성애를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하고 처벌해온 영국 ‘소도미(sodomy)’ 조항의 영향을 받아 1948년 미군정 시기 제정된 국방경비법에 근거한 것이다. 대법원이 14년 만에 혐오를 바로잡은 것처럼 이제는 70년이 넘은 동성애처벌법 자체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 기회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현재 헌법재판소에는 인천지방법원과 수원지방법원이 군형법 추행죄에 대해 직권으로 위헌제청한 한 사건과 그 밖에 다수의 헌법소원이 계류 중이다. 위 대법원 판결 다음날에는 장혜영 의원 외 11명의 국회의원들이 군형법 추행죄 폐지안을 발의했다. 대법원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한 만큼 국회와 헌법재판소 역시 하루빨리 전향적인 결정을 내리기를 촉구한다.

무엇보다 군 스스로의 변화가 요구된다. 대법원 판결의 사건은 2017년 육군의 동성애자 군인 색출사건에서 비롯한 것으로서 판결에서는 이러한 위법한 수사의 문제점도 지적한 바 있다. 그렇기에 이번 판결을 통해 성소수자를 색출하고 처벌하며 쫓아내는 공간이 아닌 모든 사람의 존엄이 보장받는 평등한 군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자신의 책무임을 군이 자각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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