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예술, 키치? 아방가르드?

김태권 만화가
[창작의 미래] NFT 예술, 키치? 아방가르드?

키치라는 개념이 오랜만에 다시 눈길을 끈다. NFT 예술 때문이다.

지난해 봄 비플의 NFT 예술작품이 비싸게 팔렸다. 사실은 비플이 10여년 동안 하루 한 장씩 그린 5000장 작품의 값이었지만, “그림 한 장에 75억원”이라고 입길을 탔다. 블록체인 업계가 들떴다. 예술시장도 떠들썩했다. 어떤 이는 반겼고 어떤 이는 불편해했다.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 만화가

지난해 여름 나는 물었다. “기존 미술시장에서 NFT 예술을 반기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반기지 않는 정도가 아니죠. 없어지기를 바라는 쪽이죠.” 미술계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분의 대답이다.

지난해 9월 ‘코인데스크’에는 데이브 모리스의 칼럼이 실렸다.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NFT 경매를 진행했다고 해서 예술시장이 NFT 예술을 받아들였다고 볼 수 없다. 경매회사는 전체 예술품 시장에서 큰 몫을 차지하지 않는다. 주류의 갤러리와 박물관은 NFT 예술에 별 관심이 없다.” 칼럼에는 비평가 제리 살츠의 의견이 소개되어 있다. “언젠가는 NFT 예술에도 (현대미술의 스타 작가인) 프랜시스 베이컨이 나타날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유명한) 비플의 작품 내용은 질 낮은 키치에 불과하다.” 비플과 NFT 예술을 비판하며 키치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키치란 무엇인가. 질 낮은 작품이 고급 예술인 척하는 경우에 키치라는 말을 쓴다. 안 좋은 뜻이다. “저 작품은 구린데 안 구린 척해서 더 구리다”라는 의미다. 문제는 ‘어떤 작품이 키치인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키치의 전형적인 예로 ‘정원에 뜬금없이 세워놓은 알록달록한 난쟁이 인형’을 꼽은 가브리엘레 툴러의 의견은 그래도 무난하다. 반면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은 감상적인 키치”라는 글귀를 얼마 전 어느 책에서 읽었다. 클래식 음악 팬들끼리 싸움 붙이기 딱 좋은 이야기다. 어떤 이들은 자기 취향에 안 맞는 작품을 헐뜯기 위해 키치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런데 현대예술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좋은 평가를 받는다. 지난 시대에 잘 먹고 잘 살던 배운 사람들이 싫어할수록 좋은 아방가르드 작품이다. 여기가 재미있는 지점이다. 지난 시대의 고급 예술에 익숙한 사람들은 고상한 취향을 가졌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싸구려 감성의 키치를 싫어한다. 그렇다면 키치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아방가르드가 아닐까? 흥미로운 역설이다. “키치의 감성은 나를 부르주아 감수성의 해악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키치를 표방하는 어느 현대예술가의 선언이라고 한다.

키치라는 개념은 원래 나쁜 의미였지만 이제 긍정적 맥락에서도 쓰인다. ‘키치 아트’라는 말도 쓴다. 비플의 작품을 비롯한 NFT 예술은 앞으로 키치 아트로 대접받을 것인가? 아직은 모른다. 올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NFT를 예술작품이 아니라 단순한 투기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창작자인 나로서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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