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으로서 존엄, 동원되는 평등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추가로 발의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극우단체가 벌이는 욕설 시위를 문제 삼으며 입안한 이른바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이다. 앞서 발의한 정청래 의원 안이 집회나 시위를 금지하는 장소에 ‘전직 대통령 사저’를 노골적으로 추가했다면, 박광온 의원 안은 ‘반복적으로 특정 대상·집단 혐오·증오를 조장하거나 폭력적 행위를 선동해 국민 안전에 직접적 위협을 끼치는 행위’와 더불어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음향·영상을 반복 재생하는 행위’를 금지 대상에 포함하며 공익적 성격에 힘을 싣는 모양새이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하지만 차별금지법도 제정하지 못한 야당의 발의는 개인의 존엄을 보장하는 국가의 의무를 의전의 도구로 소모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케 한다.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집단적 혐오표현을 오랜 시간 방관해온 이들이 가장 기본적인 가치에 위계를 적용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존엄과 평등, 인권의 가치는 보편성을 갖는 만큼 정치적으로 동원되기 쉽다. 이는 종종 논쟁적인 상황을 직면케 한다. 지난주 방한한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한국의 성소수자 활동가들과 면담을 가졌다. 선진국 대사관들이 연례행사처럼 국내 성소수자 인사를 초대하는 일은 낯설지 않지만, 여기에는 변변한 인권제도 하나 없는 한국 정부에 외교적 제스처를 취하며 자국의 인권 옹호적인 태도를 전시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간담회에서 그는 차별금지법의 필요를 강조하며 성소수자 인권 증진에 미국도 함께할 것을 언급했다. 대사관저에서 성조기와 함께 무지개 깃발을 게양하는 의식도 있었다고 하니 의미는 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환영하면 그만일까.

미팅 다음날 그는 한·일 외교차관과 함께 3국 안보협력 의지를 확인하며 미국의 확고한 방위를 공약했다. 조 바이든 정부는 인권을 동원하며 세계 안보의 주도력을 강화하려는 뜻을 굳이 숨기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면 미국은 한국에 안보라는 당근과 평등의 제도화라는 채찍을 같이 준 것일까. 타국의 고위직 인사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한국 정부에 직접 요구하는 일은 거의 없겠지만, 미국 정부가 인권을 대변할 수 있는가는 계속해서 물을 수밖에 없다. 간담회에는 고 변희수 하사와 성폭력 피해자였던 레즈비언 해군 군인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지구적 갈등과 긴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애국할 수 있었지만 희생된 성소수자 군인’이라는 프레임에 우겨넣어 이해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대사관에 무지개 깃발이 올라간 모습을 지켜본 한국 성소수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개인 존엄을 지키는 국가의 의무가 팬덤 정치의 도구로 동원되는 상황에서, 평등과 인권이 안보와 국제정치에 소비되는 외교 무대에서, 인권운동은 저들이 내보이는 인권 옹호적 상황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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