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와 바다를 만나는 법

이광표 서원대 교수
일제가 만든 경주 감포 바닷가의 수족관.

일제가 만든 경주 감포 바닷가의 수족관.

포항의 호미곶 등대가 ‘2022년 올해의 세계등대유산’(국제항로표지협회 주관)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1908년 세워진 호미곶 등대는 구조적으로 튼튼하며 세련되고 날렵한 조형미를 자랑한다. 수직 상승하는 그 형태가 특히 더 모던한 분위기를 풍긴다. 조형미로 치면, 군산 어청도 등대를 빼놓을 수 없다. 원통형의 뽀얀 등탑(燈塔). 그 중간 부분을 한옥의 서까래 모양으로 꾸미고 맨 꼭대기엔 붉은색 등롱(燈籠)을 배치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흰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루고 고풍스러운 돌담이 이어진다. 동화 속의 한 장면 같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

이광표 서원대 교수

그래서일까. 등대 하면, 흔히 낭만을 떠올린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항해, 그리움과 외로움, 한 줄기 빛과 그에 호응하는 뱃고동…. 우리가 근대식 등대를 만난 것은 20세기 초였다. 그 무렵 등대는 대표적인 서구 문물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우리 등대는 대부분 일제의 침략 의도에 따라 만들어졌다.

최초의 근대식 등대인 인천 팔미도 등대는 일제의 요구에 떠밀려 대한제국 정부가 세운 것이다. 1903년 팔미도 등대, 소월미도 등대의 불을 밝혔고 1904년엔 팔미도 남쪽의 섬 부도에도 등대를 세웠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항로표지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그러나 그건 모두 일제 침략의 항로였다.

호미곶 등대도 그 내력이 안타깝다. 1901년 무렵 일본의 수산실업전문학교 실습선이 포항 호미곶 앞바다에서 해양 생태를 조사했다. 한반도 침략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실습선이 암초에 부딪혀 승선자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일제는 그 책임을 대한제국 정부에 뒤집어씌웠다. 국운이 쇠한 대한제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호미곶에 등대를 세워야 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어청도 등대는 어떠한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오사카(大阪)~중국 다롄(大連) 사이의 정기항로를 개설하면서 어청도를 중간 기착지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일본인들이 어청도로 대거 이주해왔다. 그들은 어청도에 소학교, 우편국, 약국, 요리점, 과자점, 목욕탕 등을 세웠다. 어청도의 일상을 일본인들이 점령한 것이다. 1912년 생긴 어청도 등대는 그 점령의 결과물이었다.

몇년 전 경주시 감포읍 감포항 주변의 근대유산을 답사한 적이 있었다. 감포항은 1920년 일제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후 일본 어민들이 이주해왔다. 그런데 선박의 암초 추돌사고가 빈번해졌다. 사고를 막기 위해 일제는 1933년 감포항 옆 송대말에 등대를 세웠다. 당시의 등대는 사라지고 받침 부분만 남아 있고 후대에 지은 등대들이 빛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등대 옆 해안의 주상절리 일대다. 주상절리 바위 사이사이로 콘크리트 칸막이 구조물을 설치했고 그로 인해 10여개의 공간이 생겼다. 이걸 처음 봤을 때 참 의아했다. 누군가 “일제가 만든 천연 수족관”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곳에 생선과 해산물을 보관했다는 말이다. 기발하다면 기발한 발상이고, 그래서 낭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콘크리트로 그 아름다운 주상절리 사이사이를 칸막이 해놓았다니, 그 또한 침략이었다.생각이 이즈음에 이르자 천연수족관이 한없이 처연해 보였다.

근대기 우리의 등대. 바다를 비추는 불빛은 치명적인 매력이지만, 누군가의 말대로 그건 분명 “제국의 불빛”이었다. 어청도에서 하선해 등대로 향하는 길은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감포 송대말의 주상절리와 주변 등대는 그 자체로 낭만적이다. 그러나 그 곳곳엔 근대의 상처가 숨어 있다. 세계등대유산 호미곶 등대도 마찬가지다. 그 상처까지 기억할 수 있어야 아름다움과 낭만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숨겨진 상처에 무심한 것 같다. 현장에 가면 아쉬움이 더 크다. 무언가 창의적이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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