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숟가락의 깊이

연속적으로 산다. 띄엄띄엄 살 수 없는 게 목숨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 나날 중에 숟가락을 들지 않은 적 하루도 없다. 이력(履歷)이란 신발이 돌아다닌 역사란 뜻이지만 그 고단한 방황을 가능케 한 건 따로 있으니 숟가락이 실어나른 밥심의 집합과 발산이겠다. 무정한 숟가락에 강렬한 인상 하나를 얹은 건,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꼬방동네 사람들>의 독후감 덕분이다. 밑바닥에서 맨몸으로 뒹굴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질펀한 육담과 거친 언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요란한 말싸움 끝에 이렇게 한 방 내지른다. 야, 이 새캬, 당장 밥숟갈 놓고 시퍼!

이런 숟가락도 있다. 등산 갔다가 절에 들러 물 한 모금 뜨는데 물통 옆에 코팅된 채 걸린 법구경의 한 구절이 마음을 때렸다. 어리석은 사람은 평생 지혜 있는 사람의 곁에 있어도 진리를 얻지 못한다. 마치 숟가락이 국물맛을 모르듯.

저 세상이 한 그릇의 국이라면 나는 거기에 담긴 숟가락에 불과한 것. 오늘도 점심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멀뚱멀뚱 국물맛을 모르는 숟가락처럼 설렁탕집 식탁에 앉아 주문을 한다. 텔레비전에서는 한국인 최초의 필즈상 수상 소식을 전한다. 영광의 수상자는 “수학은 인간이라는 종(種)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또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일”이라는 수상소감을 밝혔다.

정치권은 닭장처럼 가관이다. 잠시 여의도의 소란에 귀를 닫고 숟가락을 새삼스레 바라본다. 지금 방정식처럼 우아한 균형을 잡고 앉아있는 숟가락의 깊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휘영청 달빛처럼 구부러진 손잡이는 다음으로 미루자. 설렁탕과 뚝배기에도 각각의 깊이가 있고 그 국물을 잘람잘람 미분하여 떠 오는 숟가락에도 깊이가 있다.

어쩌면 깊이랄 것도 없는 깊이, 사람의 혀에서 입천장까지의 높이에 딱 맞춘 듯한 이 깊이. 아주 옛날 나 고뿔이라도 걸렸을 때 어머니는 곱게 빻은 알약가루를 숟가락에 놓고 물 한 방울 탄 뒤 새끼손가락으로 조심조심 저어 후후 분 뒤, 꿀떡 삼키게 하셨다. 그때 눈물 그렁그렁한 내 입으로 쏙 들어오던 그 알맞은 깊이. 저 깊이를 적분하면 인생의 깊이를 겨우 알아챌 수 있을까. 깊이는 길이의 문제는 아닌 것. 이 숟가락의 깊이 아니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깊이가 왜 이 세상에는 여기저기 범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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