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 범죄화가 답이 아니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지난 21일 헌법재판소는 의료인이 아니고는 타투시술(문신시술)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이를 처벌하는 의료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지난 3월 합헌 결정을 내린 것과 동일한 결론이다. 4개월의 간격을 두고 이어진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여전히 국내의 수많은 타투이스트는 범죄화의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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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료인의 타투시술이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것은 1992년 대법원 판결에 근거해서이다. 당시 대법원은 타투시술이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본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으며, “문신시술 행위가 의사의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으로써 시행되지 아니하면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일반 공중위생에 밀접하고 중대한 위험이 발생할 염려가 있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한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판시하였다.

그렇게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와 같이 타투시술을 의료인만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영국, 호주 등은 자격, 면허 등을 통해 직업제도의 하나로서 타투시술을 관리할 뿐, 이를 의료행위로 보지 않는다. 한국과 유사하게 비의료인의 타투시술을 의사법 위반으로 처벌해온 일본 역시, 2020년 최고재판소가 “타투는 의료와 달리 예술적 기술이 필요하며, 이는 오직 의사만이 수행할 수 있는 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월 국회의장에게 비의료인의 타투시술을 비범죄화하기 위한 입법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처럼 국내외의 여러 상황 변화들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30년 전의 판례에 기반하여 타투이스트들은 처벌되고 헌법재판소는 이를 합헌으로 판단하였다.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비의료인의 타투시술을 금지하고 처벌해야만이 보건위생상의 위해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공중보건상 목표를 달성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한다. 가령 HIV 감염인의 전파매개행위에 대한 처벌은 감염인을 범죄화함으로써 HIV/AIDS의 예방과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왔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방역조치 위반을 이유로 한 고강도의 처벌 또한 감염병에 걸렸거나 걸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낙인을 초래해 사회 전반의 감염병 대처 역량을 약화시켰다.

타투시술에 대한 범죄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2018년 기준 국내에서 타투시술을 받은 사람이 13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타투시술이 활성화되어 있음에도, 범죄화로 인해 제대로 된 관리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은 오히려 시술 과정에서 보건위생상 해악을 가져온다.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에서 이석태 재판관 등 4인의 반대의견 역시 “오로지 안전성만을 강조하여 의료인에게만 문신시술을 허용한다면, 증가하는 문신시술 수요를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여 오히려 불법적이고 위험한 시술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나아가 처벌의 위험으로 인해 타투이스트들이 이용자로부터 비용을 받지 못하고 고소 위협을 당하거나 성추행, 폭행 등 피해를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는 상황들도 발생하곤 한다.

처벌과 통제를 통해 시민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법과 제도 뒤에는 범죄화로 인해 고통받고 낙인찍히는 개개인의 사람이 있음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된다.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두피 문신시술을 하여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였다고 기소된 사안에 대해 심리를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대법원이 동성애에 대한 낡은 관념에 기초하여 내렸던 기존의 군형법 추행죄 판례를 뒤집은 것처럼, 이번에도 30년 전의 낡은 판례를 바로잡는 전향적인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국회 역시 하루빨리 국가인권위의 의견표명을 존중하여 타투시술 관련 입법을 처리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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