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위기와 위험천만한 역주행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 7월 들어 달러 환율은 1300원을 넘어 고공행진 중이고 코스피 지수는 한때 2300 밑으로 떨어졌다. 6%대 물가상승률에 상반기 무역적자 103억달러. 그러나 수출 전망은 하반기에 더 어둡고 급기야 내년 상반기는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최근 발표된 OECD의 한국 경기선행지수는 눈앞에 닥친 리세션(침체)의 위험을 6개월째 예고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긴축 선회 이후 세계 곳곳에서 전해져오는 신흥국 금융불안 소식도 불편하다. 그러나 최악의 시나리오는 따로 있다. 가계부채와 주택가격이 역대 최고 수준까지 부풀어 오른 상태에서 진행되는 한국은행의 속도 조절 없는 기준금리 인상과 8%를 향해 뜀박질하는 시중 담보대출금리가 가져올지도 모를 파급효과가 그것이다. 지금 한국경제는 가계부채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가계대출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막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주로 현행 대출규제가 과도해 향후 단계적으로 완화하겠다는 ‘빨간색 청개구리’ 같은 이야기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계산할 때 더 많은 예외를 허용하고 이미 집이 있는 사람한테도 담보인정비율(LTV)을 올려 대출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이런 위험천만한 역주행이 없다. 사실 이렇게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사회는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 복지가 미약해 시민들이 복지 욕구를 각자도생의 ‘내 집 마련’ 실현으로 충족시켜야 했다. 부동산은 사적 복지의 기반이었다. 역대 정부는 재정을 아끼면서 중산층을 육성하는 가장 손쉬운 길로 집값 부양에 나섰다. 금융적 수단이 단골손님처럼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의 전세자금대출 활성화나 박근혜 정부의 노골적인 대출 확대가 그랬다. 그 귀결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주택가격과 그만큼 늘어난 가계부채였다.

기실 가계부채 누증은 한국경제의 가장 취약한 단면을 드러내는 현상이다. 저성장과 양극화의 그늘은 960조원 넘게 급증한 자영업 대출에 고스란히 흔적을 남기고 있다. 필수적 지출을 대출에 의존해야 하는 저소득층의 고단한 삶에도, 닫힌 기회의 창을 ‘영끌’과 ‘빚투’로 열어보려는 청년세대의 상실감에도 같은 그늘이 깃들어 있다. 위험은 아래로 흘러들고 약탈적 대출이 그들을 노린다. 당장 9월 이후 만기연장이 안 되고 대출금리가 오르면 저소득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연쇄부도가 덮쳐올지 모른다. 위험은 다시 취약계층에 120조원을 빌려준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로, 그리고 부동산 PF 관련 유동화증권 차환 물량의 인수로 보증채무가 늘어난 증권회사들로 향한다. 재벌 대기업과 건물주들이 모든 경제적 가치를 빨아들이면서 좋은 일자리가 너무나 귀해진 이 나라의 현실이 이렇다. 결국 가계부채 위기의 양상도 한국경제의 가장 취약한 부문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해법은 근본적이어야 하고 멀리 내다보는 것이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노동소득과 자산가치의 격차가 문제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가계소득 기반을 튼튼히 하고 공적 복지의 확충으로 ‘자산기반 복지’를 대체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가계부채 대책이다. 하지만 시급히 해야 할 일도 있다. 한계차주의 이자부담 완화라는 당면과제를 위해 한시적으로나마 대출금리에 상한을 두고 변동금리 대출의 고정금리 대출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방안부터 강구할 필요가 있다. LH공사 등을 통해 한계차주의 주택을 매입한 다음 재매입 옵션과 함께 임대해 주거권을 보장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그리고 기존의 거치 후 만기 일시상환 방식을 분할상환 방식으로 바꾸는 대출관행상의 개선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전세자금대출을 활용하는 갭 투자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가계부채 증가세를 꺾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차제에 전세자금대출 제도를 개편하고 예외조항과 풍선효과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DSR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더 늦기 전에 가계부문 경기대응 완충자본 제도를 도입해 가계대출로의 편중위험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 관리를 위해 대손충당금 최저 적립비율을 상향 조정하는 것도 바람직할 수 있다. 주택가격이 담보대출 금액을 하회하게 되면 차주와 은행이 손실을 분담하는 채무재조정 원칙도 검토가 필요하다. 별제권의 범위를 제한하는 개인도산제도 정비도 미리 서두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취약차주의 부실화는 장차 경제회복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기 쉽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는 정치 역량이 중요하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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