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트를 만드는데 조각천이 모자란다

요즘 방문의료에 대한 기사가 이렇게 많이 실리는데도, 아직도 “우리나라에 방문의료가 필요해? 병원에 쉽게 갈 수 있잖아?”라는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 119도 있고 장애인콜택시도 있는데, 그게 뭐가 어려워?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재택의료센터 가정의학과 전문의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재택의료센터 가정의학과 전문의

준우씨(가명)는 34세의 중증 지적장애인이다. 임신 7개월에 조산으로, 1.6㎏의 몸무게로 태어나 뇌성마비를 진단받은 준우씨는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는 것도 보호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준우씨가 병원을 못 가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다. 뇌전증과 적혈구증가증에 대해 대학병원에서 꾸준히 진료를 받고 있고, 혈액검사 진료, 사혈을 위해 1년에 서너번 외출을 한다. 그 외에는 집 앞에 있는 10개의 계단이 준우씨의 외출을 가로막고 있다. 외출하려면 누군가 준우씨를 업어 계단을 내려와야 한다. 준우씨의 몸무게는 80㎏은 넘어 보인다.

현자 어르신(가명)은 80세의 중증 뇌병변장애인이다. 18년 전 뇌경색 이후 와상 상태로 지내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4층에서 살고 있다. 지금 집도 주택공사에서 임차한 집인데,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으로 임차를 변경하여 신청하려 해도 번번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두차례 병원을 방문한 것이 전부였다. 모두 응급실이었다. 웬만한 경우는 병원에 가지 못하고 약만 똑같이 ‘복붙’ 처방받아가다가, 상태가 악화되어 응급실이라도 가야 할 정도가 되어야 119를 부르는 것이다. 돌아올 때는 10만원이 넘는 돈을 내고 사설구급차를 불러야 한다.

이것도 병원에 갈 수 있는 거라면야, 적어도 “뭐가 어려워?”는 아닐 것이다. 가려면 갈 수는 있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물론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중증장애인이라면 ‘장애인주치의 시범사업’을 통해 방문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전 국민 누구나 거동불편의 사유가 있다면 동네의원 의사·한의사의 방문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도 시작되었다.

10년 전부터 방문진료(왕진)를 해왔던 나의 입장에선, 지난 몇 년간 이런 시범사업들이 생기면서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환자나 보호자들도 “방문진료가 늘어나니 너무 좋아요”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이 숨통 트인 느낌에 만족할 순 없다. 방문진료 하나 생긴 것일 뿐,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나는 커뮤니티케어가 지역사회에서 보건·의료·복지·돌봄에 종사하는 다양한 직종들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펼쳐나가야 하는 종합 예술, ‘퀼트’라고 얘기해 왔다. 여러 조각천들을 모아서 쓸모있는 것을 만드는 일, 커뮤니티케어야말로 퀼트다. 많은 제도들이 운영되고 있지만, 이걸 통합해내는 게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와 저 시범사업 사이를 잘 이어 붙여서, 주민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동네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온전한 퀼트를 향한 다음 스텝에서 가장 부족한 조각천은 간호이다. 현재 가정을 방문하는 간호는 건강보험의 ‘가정간호’, ‘장애인 방문간호’, 장기요양보험의 ‘방문간호’ 정도밖에 없다. 1년에 배출되는 가정간호사는 30명 전후로 턱없이 부족하고, 장애인주치의는 중증장애인만 대상인데 그나마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방문간호를 받지 못한다. 장기요양 방문간호도 장기요양 등급이 있어야 하는 데다, 방문요양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만 한다.

사실 장애인등급이든 장기요양등급이든, 등급을 받은 후보다 등급조차 받기 전이 훨씬 더 고단한 시기가 아니던가. 안정적인 방문간호가 제공되는 것이, 불필요한 입원을 줄이고 고령자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데 중요하다는 얘기는 언급하기에도 새삼스럽다. 우리에겐 동네 주치의의 방문진료와 함께하는 동네 방문간호가 필요하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