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삼위일체

정제혁 사회부장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을 진단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지지율이 푹 꺼진 상황이었으니 평가가 좋았을 리 없다. 부정적 평가는 무책임한 실험주의, 무분별한 복수주의, 법기술 만능주의로 요약된다.

정제혁 사회부장

정제혁 사회부장

무책임한 실험주의는 ‘일단 바꾸자’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후과를 단단히 치르고 있다. 이전 정부가 대통령실 이전을 검토했다가 포기한 데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게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이전부터 했다. 윤 대통령이 서초동 자택에서 용산 집무실까지 차량으로 출퇴근하고 한남동 옛 외교부 장관 공관을 대통령 관저로 뜯어고치는 어수선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졸속은 졸속을 낳는다. 대통령 관저 공사를 둘러싼 여러 잡음, 용산 대통령실 앞 옛 국방부 연병장에서 열린 추레한 광복절 기념식이 그렇다. 청와대 위기대응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서울 도심에 폭우가 쏟아진 날 대통령실이 우왕좌왕한 것도 대통령실 졸속 이전이 한 원인이다.

이런 일이 한둘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민정수석실을 없앴다. 민정수석실이 하던 고위공직자 검증 업무는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해 이관했다. 이를 위한 입법예고 기간은 단 이틀에 불과했다. 민정수석실이 없으니 서둘러 인사정보관리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비슷한 논리로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도 4일 만에 끝냈다. 주요 제도나 기관을 일단 없앤 뒤 ‘공백을 메워야 한다’면서 졸속으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습성이 되었다. 대통령 부인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을 없앤 것도 마찬가지이다. 제2부속실 폐지는 김건희 여사가 공적으로 활동하지 않아야 아귀가 맞는데, 김 여사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김 여사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이상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관리에 사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적 연고에 따른 특혜채용 의혹, 보안사항인 윤 대통령 일정 노출이 그런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정치 경험도, 국정운영 경험도 없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을 튼실하게 뒷받침할 상황이 아니다. ‘5세 입학’ 정책으로 낙마한 박순애 교육부 장관 사례에서 보듯 내각이 짱짱한 것도 아니다. 야당과 통 크게 손을 잡으려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기능부터 축소했다. 그 결과가 국정의 공동화요,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나라이다.

무분별한 복수주의는 ‘복수는 나의 힘’이라는 태도이다. 현 정부 ‘사정 트로이카’로 불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안부 장관,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에게서 유독 강하게 나타난다. 한 장관과 유 사무총장은 전 정권에 대한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이는 매사 전 정권 탓을 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의 수사기밀 유출 의혹에 대해 한 장관은 “진짜 문제가 됐다면 이 후보자가 어떻게 전 정권(문재인 정부)에서 검증까지 통과해서 검사장까지 승진했겠느냐”고 말한다. 한 장관은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지휘한 사람이고, 이 후보자의 수사기밀 유출 의혹은 사법농단 수사 때 처음 인지된 사실이다. 사법농단 수사 책임자로서, 이 후보자 인사검증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자초지종을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오해가 있다면 풀고, 부적절한 것이 있었다면 인정하고 교정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정상이다. ‘너나 잘하세요’식 태도로 적당히 눙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너도 그랬잖아’ ‘왜 나만 가지고 그래’식 남 탓은 유아적인 언어이지 성숙한 어른의 언어가 아니다. 한 장관을 두고 “너무 설친다” “미운 일곱 살 같다”는 비아냥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헌법기관인 감사원을 복수혈전의 무대로 삼는 유병호 사무총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법기술 만능주의는 ‘법기술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것이다. 시행령 통치, 의회주의 경시와 같은 계열이다. 법무부가 검찰청법 개정 취지에 반하는 ‘검수원복’(검찰수사권 원상 복구) 시행령 개정을 밀어붙이는 것, 행안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경찰국을 신설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무책임한 실험주의, 무분별한 복수주의, 법기술 만능주의는 연결돼 있다. 전 정권과 무조건 달라야 한다는 강박이 국정운영 지표라면 전 정권에 앙갚음하려는 마음은 그 심리적 에너지다. 여기에 실행을 담보할 법기술이 더해지면 삼위일체가 완성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더 이상 전 정권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근본적인 성찰 없이는 전 정권 탓하는 태도를 바꾸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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