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의 거리두기] 제3의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하고 ‘정당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3의 세력이 필요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극한 대립의 광경은 정말 짜증스러울 뿐만 아니라 정치적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진영만 달라졌을 뿐 똑같이 적폐 청산을 부르짖는 정치인들을 제일 먼저 쓸어버려야 한다는 극단적인 말도 곳곳에서 들린다. 그런데 사회 영역 가운데 정치가 제일 후진적이라고 소리 높여 비난하다가도 곧 그런 정치인을 뽑은 것이 바로 우리 국민이라는 사실에 자괴감이 든다. 선거를 통해 정권이 ‘평화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정치제도는 분명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선거가 끝나면 정치판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극단적 양당제는 다분히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이다.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기는커녕 심각하게 왜곡하기 때문이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문제는 정치인들의 저급한 정치의식도 아니고 우리의 국민성도 아니다. 정치 문화를 타락시키고 정치는 본래 정쟁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극단적인 양당제다. 양당제는 세력이 비슷한 2개의 정당이 선거를 통하여 교대로 집권하는 정치제도를 일컫는다. 정권을 잡은 정치적 지도자가 권력을 함부로 독식하거나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민주적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양당제 자체는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양당은 무엇이 국민의 뜻이고 또 어떤 정책이 민생을 위한 것인지를 헤아리는 정치적 행위의 경쟁자일 뿐이다.

양당제는 선의의 경쟁자를 제거되어야 할 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을 대변하는 두 정당이 절대적인 다수를 차지하여 정치적 여론 형성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양당제에서 정당이 진영화되고 극단적으로 대립하면, 반대당은 청산되어야 할 적이 된다. 한 정치적 진영은 반대의 경쟁자를 위협적인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에 이판사판의 정쟁이 일상화된다. 문제는 중간의 어떤 통로도 없이 더욱 멀어져가는 두 진영의 양극화와 이를 초래한 극단적 양당제이다.

민주주의는 역설적이게도 양당제로 붕괴한다. 우리 국민 자체가 두 편으로 갈라져 두 정당 외에는 다른 정당들에 표를 주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붕괴는 다름 아닌 투표장에서 일어난다. 제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단지 0.73%포인트의 차이로 당선되었다. 윤석열 후보의 득표율은 48.56%였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은 47.83%였다. 제3정당인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는 단 2.37%에 불과했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양당제가 더욱 공고해진 것이다.

민주주의는 극단적 양당제로 붕괴

선거라는 규칙을 외관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내면적으로 그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양당제에서 ‘0.73%포인트’는 협치가 아니라 극한 대립의 씨앗이다. 여기서 누가 먼저 정쟁을 시작하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협치와 정쟁의 두 길 중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는 사실 어리석은 질문이다. 어느 보수 언론인의 말처럼 윤석열 대통령은 대장동·백현동 사건과 관련하여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법정에 불러내면서 협치 대신 정쟁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윤 대통령에게 실망한 보수 진영의 사람들조차 이왕 뽑아줬으니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을 하라고 주문한다. 좌파 정권이 저질러 놓은 잘못들을 청소하고, 상대 당의 대표라고 할지라도 잘못이 있으면 법정에 세워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는 것이다.

야당이 입법 권력을 장악한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법치’를 통치 수단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헌법정신이라는 이름으로 비판하였던 문재인 정부의 ‘법에 의한 지배’를 답습하고 있다. 정치적 문제조차 법의 잣대로 결판내려는 정치의 사법화는 궁극적으로 대화와 타협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형식적 법치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지난 정권에서 충분히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구습을 반복하는 것은 결국 극단적 양당제 때문이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민주주의를 지켜온 두 가지 핵심 규범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도 인정하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특권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제도적 자제’는 민주주의의 핵심 규범이다. 이러한 규범은 사라지고 법만으로 통치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민주적 법치가 아니다.

극단적 양당제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민주적 규범을 해친다. 양당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이 설 자리는 없어서 협치는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제3의 정치적 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의회 민주주의는 본래 민의를 효율적으로 대변하는 정치적 제도다.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국민의 뜻은 본래 하나가 아니다. 다원성은 본래 모든 정치의 필요조건일 뿐만 아니라 가능 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절대적 조건이다. 의견이 하나밖에 없는 곳에는 정치란 없다. 하나의 정당보다는 두 개의 정당이, 그리고 양당제보다는 다당제가 민주주의에 부합한다. 정당이 너무 많으면 혼란을 초래하여 통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우려는 극단적 양당제의 오래된 미신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선진국은 다당제이다. 독일과 서구의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당들 사이의 타협과 협치의 산물인 연정은 민주주의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정쟁의 악습을 끊으려면 우리에겐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양당제를 유지하면서 ‘당내 민주화’를 추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3의 정치 세력’을 키움으로써 다당제의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팬덤 정치에 포위된 더불어민주당과 당 내부의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정으로 끌고 간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것처럼 진영화된 상황에서 당내 민주화는 요원해 보인다. 극단적 양당제에서 적과 싸우려면 하나의 통일된 의견이 지배하는 일사불란한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의 안과 밖에서 결코 다른 의견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렇게 민주주의는 서서히 무너져간다.

중도정당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양대 정당의 적대적 대립을 극복하고 민주적 정당 문화를 구축하려면 오히려 제3의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 만약 제3의 정치 세력이 10%대의 지지율을 획득한다면, 양대 정당의 어느 정당도 입법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제3의 정치 세력과 협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구조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양대 정당이 연정할 수도 있고, 다수 정당과 소수 정당이 협치할 수도 있다. 각 정당의 정치적 이념과 정책적 방향이 다르더라도 정당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타협하고 협치한다. 노선이 불분명하거나 기존 다수당과 비슷해지면 오히려 정치적 세력과 영향력을 상실하는 것을 보면, 다당제가 민의를 훨씬 더 잘 대변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주창한 ‘제3의 길’은 시장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으로 여겨졌다. 오늘날 서구 선진국의 주요 다수당은 대체로 제3의 길을 걷고 있다. 실제로 진보 정당은 전통적 좌파가 시장에 대해 가졌던 적개심을 버리고 시장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보수 정당은 좌파의 이념으로 여겨졌던 불평등의 해소에 적극적이다. 경제성장을 통해 복지국가를 실현하려 한다는 점에서 좌파와 우파의 경계선은 모호하다. 정치적 중도를 지향하는 제3의 길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그런데 우리의 다수당은 여전히 서로 적대적으로 대립한다. 이렇게 극단적인 양당제에서 중도는 배척되고, 중도가 배척될수록 양당은 더욱더 극단화한다. 양단이 극단적으로 대립할수록, 정책 대결은 실종되고 인물 중심의 권력투쟁만 남게 된다.

지금의 정쟁은 모두 다음 총선에서 다수를 획득하기 위한 적나라한 싸움일 뿐이다. 그들은 틈만 나면 국민의 뜻과 민생을 입에 올리지만, 실질적 관심은 득표의 숫자에만 있다. 이 파괴적이고 비생산적인 정쟁을 멈추려면, 우리는 양당에 너무 쉽게 표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양당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중도가 움직여야 한다. 주위에는 기존 정당에 끔찍하게 질려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결집할 수 있는 제3의 중도정당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음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 상황에서 이런 꿈이라도 꾸지 않으면 참 견디기 힘든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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