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정치, ‘나이’가 권력이 될 때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의 거리두기] 장로정치, ‘나이’가 권력이 될 때

증오 범죄가 증가하고, 한국사회의 부와 성장을 상징하는 강남은 물에 잠기고, 물가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오르고 금융시장은 불안정하다. 우리를 에워싼 국제 환경은 더욱 녹록지 않다. 기후변화,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 팬데믹, 중국과 미국의 충돌은 어느 때보다 국가의 정치력을 요구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정권이 새롭게 바뀌었음에도 ‘새로움’을 느끼기는커녕 짜증이 날 정도로 구태의연하다면, 우리 정치가 민주화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너무 빨리 늙어 ‘장로(長老)정치’(gerontocracy)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장로정치란 글자 그대로 대부분의 성인 인구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지도자가 통치하는 과두정치의 한 형태이다. 물론 ‘장로’는 단순히 나이가 많을 뿐만 아니라 나이를 먹어가면서 쌓은 경험을 기반으로 덕과 능력이 높은 사람을 일컫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대사회에서는 나이가 든 노인은 경험과 지혜를 의미하였다. ‘장로는 통치하고, 청년은 복종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말은 장로정치의 핵심 이념이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스파르타를 실질적으로 통치한 원로원은 적어도 60세 이상의 장로들로 구성되었다.

원로정치는 물론 민주공화제와는 정면으로 대립한다. 모든 사람은 자유와 권리를 가지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민주주의의 근본이념은 나이에 따른 차별을 배제한다. 정치 권력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기회를 오직 나이 든 원로에게만 부여하는 ‘장로정치’는 정치적 ‘연령차별주의’(에이지즘)이다. 특정한 성이 다른 성보다 우월하거나 더 가치 있다고 믿는 ‘성차별주의’(섹시즘)와 인간을 인종이라 불리는 배타적인 생물학적 특성으로 나눌 수 있다고 믿는 ‘인종차별주의’(레이시즘)와 마찬가지로 연령차별주의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최대 적이다.

본래 ‘에이지즘’은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나타난 노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가 혁신과 창의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청년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노인은 전통적으로 보장받았던 사회적 지위를 상실함으로써 부정적 편견과 고정관념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기술의 급격한 변화로 청년은 미래사회를 상징하게 되면서 노인은 권위를 잃게 된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을 설립한 1998년 그들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고, 마크 저커버그는 단지 열아홉에 불과했던 2004년에 페이스북을 창업했다. 페이스북과 구글과 같은 기술 관련 대기업의 중위연령은 30세 미만이라고 한다. 21세기 디지털 네이티브는 청년이지 노인이 아니다.

연령차별주의는 민주주의 최대 적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세대 갈등은 이러한 시대 변화를 반영한다. 바뀐 것은 시대이지 결코 세대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꼰대’가 태어난 것이다. 전통문화에서는 권위의 상징이었던 ‘어른’이 디지털 시대에는 ‘꼰대’가 된다. 시대는 변화하여 사회가 이미 민주적으로 수평화되었는데도 어른들은 여전히 수직적인 위계 사회에서 통용되었던 권위주의를 버리지 못한다. 개인주의의 영향을 깊게 받은 MZ세대는 자아의식이 강하고, 개성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민감한 청년세대가 공정을 외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권위주의에 치열하게 저항하고 강한 거부감을 가진 청년세대는 사실 기성세대보다 민주적이다. 나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남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평등주의’ 의식이 그들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떤가? 시대가 변화하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였음에도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여전히 권위주의적이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는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기업에서도 ‘연공 서열’은 여전히 공고하다. 명령과 복종이 중요한 관료체제와 토론식 수업이 여전히 힘든 교육 현장에서도 권위주의는 자동으로 작동되는 디폴트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을 개혁해야 하는 정치가 훨씬 더 권위주의적이라는 데 있다. 지난 대선 때 청년세대가 정권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정치 자원으로 호명되었지만, 사실 청년세대의 의견과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여당인 국민의힘이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이준석에 대한 태도는 우리 정치가 ‘장로정치’임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이준석의 정치적 이념도 정책도, 그와 관련한 의혹도 아니다. 그에 대한 기득권 정치 세력의 반응과 태도에서 드러나는 장로정치와 정치적 연령차별주의가 우리의 관심이다.

“떼쓰는 아이 같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에서 나오는 반응은 이 한마디로 압축되는 것처럼 보인다. ‘떼쓰다’는 부당한 일을 해 줄 것을 억지로 요구하거나 고집할 때 하는 말이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사리를 분별하는 지각이 없는 사람을 ‘철부지’라고도 한다. ‘떼쓰는 철부지.’ 자신이 처해 있는 정치적 환경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부당한 요구를 하는 정치신인이라는 뜻이리라. 우리는 물론 어느 정치인의 정치적 미숙과 결함을 비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자신들이 뽑은 당대표를 지금 와서 떼쓰는 아이 취급하는 정치문화다.

그는 왜 내쳐진 것일까? 새로 정권을 잡은 윤석열 대통령은 여소야대의 불리한 조건에서 성과를 내려면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정당 조직이 필요하다. 외부 환경이 나쁘면 나쁠수록 우리는 내부의 단결과 통합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혼란과 갈등으로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민주사회에 도움이 되는 의견의 차이와 비판을 수용하지 못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새로운 인물을 찾는 대신에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측근을 선호한다. 윤석열 정부의 인사를 대변하는 ‘서·오·남’은 서울대 출신의 오십대 남자가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응집력이 강한 이러한 측근의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될수록, 민주주의의 핵심인 다원성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다양성 수용해야 정치가 젊어져

왜 우리는 청년 장관이 없는가? 윤석열 정부 1기 내각의 평균연령이 대략 60.5세라고 한다. 2022년 한국의 중위연령이 45세인 점을 고려하면 ‘장로정치’임에 틀림없다. 나이가 실력의 기준인 듯 젊음과 새로움은 보이지 않는다. 청년세대가 정치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나이 든 사람이라고 해서 정치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나이가 권력이 될 때 장로정치는 폐쇄적인 과두정치로 타락한다는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국은 종종 장로정치의 모델로 소개된다. 그 세대의 마지막 주자로 1964년부터 1982년까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가 1982년 사망하였을 때, 정치국 구성원의 중위연령은 71세였다. 장로정치는 현실의 요구와 시대의 변화에 둔감하면서도 정권 유지에는 집착하는 사람들의 과두정치이다.

한국에서도 나이는 중요한 권력의 기제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 문화에서는 나이를 중심으로 서열을 매긴다. 위계가 불분명할 때 우리는 주민등록증을 내보여서 나이로라도 위계질서를 확립하려고 한다. 우리에게 나이는 막강한 계급이다.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나이를 따지는 권위주의적 인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알고 보면 한국사회의 고질병이라는 혈연, 지연, 학연도 모두 ‘나이’로 조직된다. 사회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학교에서 선배와 후배로 분류되는 사회에서 나이는 계급이다. 나이 계급은 집단화의 중요한 수단이다. 집단 속에서 개인은 나이로 위계화되는 순간 지도자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집단에 흡수된다. 개성을 중시하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개인이 설 자리는 없다.

정치는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세상에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을 모으는 일이다. 우리의 정치는 과연 청년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아니면, 정치적 꼰대처럼 청년세대의 다름을 인정하는 대신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그릇만 바뀌었을 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면, 우리의 정치는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다. 정치가 젊어지는 유일한 길은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인정한다면 의견이 다른 정치인을 ‘떼쓰는 철부지’ 취급은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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