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수치심의 해부학

인아영 문학평론가

“한마디로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될 것.”(<부끄러움>) 아니 에르노의 문장을 빌려 그녀의 문학을 소개하라면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까. 감정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스스로를 임상 해부하듯 냉철하게 분석하는 치열한 글쓰기. 디디에 에리봉의 말을 빌리면 “나를 발명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나를 분리”해낸 귀한 결실이다. 그 문학적 자기 발명을 높이 산 한림원은 며칠 전 그녀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는 이유로 ‘사적인 기억의 근원을 파헤치는 용기와 예리함’을 꼽았다. 임신중단이나 기혼 남성과의 사랑 등 실제 경험을 다룬 자전적 이야기라는 사실과 함께 자주 인용되는 이 문장도 에르노가 여성의 욕망을 여과없이 드러냈다는 이해를 덧대왔다. “이런 이야기를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이 단호한 문장이 담긴 소설은 1991년 프랑스에서 아니 에르노를 단숨에 주목시킨 <단순한 열정>.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첫 문장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러시아 외교관인 기혼 남성 A가 떠난 이후 여자는 그와 관련된 기억은 모조리 기록한다. 그가 남긴 침대 위 음식 부스러기, 담배꽁초가 쌓인 재떨이, 어지럽게 늘어진 속옷을 치우지 않고 미술관의 그림처럼 보존해두었던 순간. 그의 전화를 기다리는 끔찍한 시간을 겪지 않으려 차라리 그와 헤어지고 싶다고 갈망했던 순간. 그가 남긴 흔적이 하나라도 추가될지 모르니 문득 에이즈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기쁜 아이디어. 머릿속에서 그와의 추억을 연장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그가 부재한다는 고통을 생생히 실감하는 대가를 얼마든 치를 준비가 되어있다. 모든 일상이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영원히 반복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자기완결적이고 담대한 사랑 이야기를 나는 읽은 적이 없다. 글쓰기 속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를 경유해 사랑의 순간을 완성하는 아름답고 진솔한 기록이다. 그러나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대목에는 신중한 단서가 달려있다. 바로 “남들이 알게 되기 전에 내가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전제. 즉 남들에게 절대 읽히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그녀는 겨우 내면을 고통스럽게 언어화하기 시작한다. 여성의 섹슈얼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 옆에 나란히 놓일 테지만, 여성적 수치심의 역학을 글쓰기의 원리이자 방법론으로 가동했다는 점에서 에르노의 문학은 독보적이다.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롭거나 자기검열을 극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결코 투명하게 노출하거나 벗어던질 수 없는 수치심과 현실 사이의 되먹임을 정교하게 축조했기 때문이다.

1940년 프랑스에서 노동 계급의 딸로 태어난 에르노의 문학은 수치심이 평생에 걸쳐 무수하게 새겨지는 여성의 몸에 관한 집요한 기록이자 2차 세계대전 무렵부터 현재까지 개인적인 기억을 프랑스 사회의 변동과 교차한 풍성한 연대기다. 1960년대 당시 불법이던 임신중단 수술부터 육체의 사소한 반응까지, 그것은 적나라하게 드러낸 여성의 욕망이라기보다 자신에 관한 글쓰기가 복잡하고 촘촘한 수치심과 무관할 수 없는 여성의 조건이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그리고 이런 경험의 진술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여성들의 현실을 어둠 속으로 밀어넣는 데 기여하는 셈”(<사건>)이라는 에르노의 말은 그런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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