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교육과정, 재검토가 맞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지난 14일 국가교육위원회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심의본을 의결했다. 토론을 거쳐야 한다는 일부 위원들의 항의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통과시킨 교육과정의 내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성소수자, 성평등, 성·생식 건강과 권리는 성 건강 및 권리로 수정됐다. 심지어 완전한 성인을 뜻하는 ‘전성(全性)적 존재’라는 용어는 “성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는 항의를 받아 삭제되었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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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6일, ‘2022 교육과정, 성평등으로 나아가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공청회에서 예상되는 성소수자, 성평등을 지우려는 혐오 앞에 흔들리지 말 것을 요구했다. 공청회 때 온갖 혐오발언이 나오고 폭력사태까지 일어나기도 했지만, 다행히 교육과정 연구진은 기존 시안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결국 교육부였다. 교육부는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하고, 성소수자 등의 표현을 삭제한 행정예고안을 발표했다. 그러고는 그보다 더 후퇴된 내용의 심의본을 국가교육위에 상정해 통과시켰다. 수차례의 심의와 의결 과정에서 교육부가 고려한 것이 교육의 가치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교육기본법 제4조는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인종,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평등한 교육은 헌법의 정신이기도 하다. 교육에서의 차별금지는 단지 교육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내용에 있어서도 차별이 없어야 함을 의미한다.

최근 대법원은 기존 결정을 뒤집고 미성년 자녀를 둔 경우에도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이 허용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연하지만 다소 늦게 나온 이러한 대법원 판단에 앞서 이미 동일한 취지의 사법적 판단을 내린 나라가 있다. 우크라이나이다. 2016년 우크라이나 키이우 행정법원은 미성년 자녀를 성별정정 불허요건으로 한 보건부 행정명령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그러면서 예상되는 반론, 즉 부모의 성별정정이 자녀에게 정신적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양육 및 교육 분야에 있어 우크라이나 정책의 원칙 중 하나는 아동에게 인간의 다양성과 인간의 행동, 그리고 부모를 비롯해 다른 사람의 권리에 대한 관용 형성을 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부모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따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적절하게 양육되고 교육된 아동에게 도덕적 또는 심리적 트라우마를 야기할 수 없다.”

다양성과 관용을 가르치는 자신들의 교육에 대한 일종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이 판결 문구를 보며, 과연 우리의 법원이 이러한 판결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성정체성과 성평등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청소년에게 혼란을 초래한다면서 용어를 지운, 그러한 교육이 다양성과 관용을 가르친다고는 결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포용성과 다양성을 가르치는 교육을 원한다. 사람의 존재를 삭제하지 말라! 학생들은 세상에 대한 열린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청소년이 고유의 인권과 스스로의 가치를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교육부가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하는 탓에 우리나라 교육이 갈 길을 잃은 것이다.

지난 11월15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1555명의 시민과 함께 2022 교육과정 행정예고안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위 말들은 성명에 연명한 시민들이 보내준 의견들이다. 졸속 심의와 의결을 한 교육부와 국가교육위보다 교육의 의미에 대해 훨씬 더 수준 높은 이해를 보이는 의견들이라 할 것이다.

교육에 대한 자부심을 줄 수 없다면 적어도 시민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국가기관의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2022 교육과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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