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마지막에 관하여

티코는 초콜릿으로 코팅한 아이스크림이다. 티코는 16세기 덴마크에서 활약한 천문학자다. 티코는 스타워스의 등장인물, 일본 애니메이션의 돌고래 요정이기도 하다. 티코, 발음하면 바싹한 과자가 혀끝을 치는 듯한 느낌의 티코. 우리나라 최초의 경차도 티코다. 출판사에서 영업에 종사하던 후배는 경운기보다 작은 티코가 고장이 아니라 휘발유가 다 떨어지면 어떻게 시동이 꺼질까. 그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몹시도 궁금해서 실제로 그때까지 몰아보자 작정하고 도로를 나섰다고 한다. 쿨쿨쿨, 잠으로는 죽음의 예행연습이 모자랐던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죽어서는 죽음을 볼 수 없으니 살아서 죽음을 목격하겠다는 후배의 대단한 결심이기도 했다. 책이 아니라 사람을 상대하는 고달픈 현장에서 생각이란 단련되고 깊어지는 것. 그런 길 위에서 궁극의 한 철학적 의문에 대한 실마리라도 찾을 실험을 후배가 자임한 것이라 해도 되겠다.

티코는 얌전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만만한 건 아니었다. 몇 군데의 거래처를 거치며 종일을 몰아도 티코는 도무지 그 발기를 풀지 아니했다. 밤을 보내고 아침에 또 시동이 걸리는 티코. 빨간신호등 아래에서 드디어 계기판에 붉은 등이 들어오고 그러고도 한참을 더 달려 허기에 지친 운전자에게 점심까지 제공한 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어느 공터를 지나, 지나다가, 지나려다가 허망하게 티코에서 내렸다는 그 이야기를 실감나게 전해주던 후배는 티코의 마지막이라며 몸을 조금 부르르 떨었다. 아마 티코는 기침이라도 하는 듯 쿨럭쿨럭 밭은 숨을 들이켜고는 그 한 모금을 뱉을 줄을 몰라 시동이 꺼지고 만 것이었다. 그 현상에 대해 나도 얼른 아는 척을 했다. 물 주기를 게을리하여 어느 땐 지나치게 깜빡했다가 아사 직전의 바짝 마른 화분에 물을 주면서 쿨렁쿨렁 흙들이 몹시 화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눈 오는 날. 멀리서 누가 넘어진다. 쌍떡잎식물처럼 좁은 두 장의 발바닥으로 이 최선의 높이를 감당하는 것도 실은 대단한 일이다. 이 지상에서 나의 마지막은 어떻게 올까. 심학산 내리막길에서 미끌, 넘어지지 않으려다 오히려 크게 넘어지고 난 뒤의 시원하고 후련하고 알싸한 기분 끝에 후배의 그 날렵한 티코와 그 티코가 멈추었다는 공터 생각이 났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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