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 목사·시인
[임의진의 시골편지] 시안의 수프

영화감독 친구가 다큐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거듭 추천. 친구는 영화감독 양영희 샘과도 절친이라 나를 양 감독과 소개해주기로 했는데, 일정이 안 맞아 훗날을 기약했다.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까지 양 감독의 대표작 DVD 세트를 소장한 나는야 열혈팬. 양 감독 선친은 제주도가 뿌리. ‘4·3’ 피해자로 제주를 떠난 이들 가운데, 바다 건너 일본으로 망명 아닌 망명을 했던 분들이 계셔. 영화는 내내 ‘마늘을 넣은 닭백숙’을 후후 불어넘기며 뿔뿔이 흩어진 가족의 설움과 그리움을 달랜다.

전라도에선 고기를 ‘개기’라 부르고, 경상도에선 ‘기기’라 해. 제주에선 돼지고기를 돗괴기, 소고기는 쇠괴기, 닭고기는 독괴기, 물고기는 몰괴기. 영화는 여름날 닭백숙 ‘독괴기 요리’ 장면이 뼈대를 이룬다. 여름 말고 겨울에도 닭백숙은 언 몸을 데우는 전통 보양식이야. 가을은 ‘간다’고 해서 가을, 또 자를 때 쓰는 ‘가위’와 같은 ‘가실’은 열매를 자르는 추수와 관계있다. 겨울은 ‘겨’가 ‘계시다’라는 뜻으로, 농사를 다 마친 뒤 ‘집에 계시는 계절’이란 말. 시안이라고도 하는데, ‘시안’은 한자어 ‘세한’의 변형이다. 봄에 생명의 씨앗을 땅에 뿌리고, 여름과 가을엔 영근 열매를 거두어 ‘한가위’를 쇠고, 겨울엔 저장한 먹거리를 친척과 이웃이랑 두루 나누며 ‘설’을 쇠는 우리 겨레.

항구로 바당괴기(바다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미역을 따오리까 소라를 딸까. 비바리 하소연에 물결 속에 꺼져가네” 콧노래를 흥흥. 또 하루는 백숙 대신 백합죽에 둘러앉아 추운 시안의 냉기를 녹이면서 가수 남진의 노랠 목이 쉬도록 불렀어.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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