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여행을 떠나요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환경적 이유로 비행기 여행을 셀프 금지한 후 다른 방식의 여행을 하고 있다. 한국에 놀러온 외국인을 잠시 룸메이트 삼아 우리 집을 공유하거나, 중고거래를 매개하는 ‘당근’에서 찾은 물건을 영접하려 낯선 골목을 기웃거리는, 일상의 모든 순간이 여행이 되는 광고 카피 같은 여행 말이다. 얼마 전 새로 시작한 여행도 내 취향을 한껏 벼린 코스였다. ‘쓰레기 덕후’스럽게 쓰레기의 요람부터 무덤까지 쫓아가는 올인원 패키지 쓰레기 투어랄까. 자원회수시설, 재활용 선별장,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을 방문하고 마지막 코스로 포장 없이 알맹이만 파는 제로웨이스트 가게에 들른다. 하지만 모든 여행의 시작과 끝은 결국 뭘 먹는가 아니겠는가. 하이라이트는 각자 챙겨온 용기에 떡볶이 등을 사서 나눠 먹는 시간이다. 용기를 챙겨오지 않아도 괜찮다. 망원시장 몇몇 가게에서는 깨끗한 스테인리스 통을 무료로 대여해준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쓰레기 여행은 매번 신청 하루 만에 마감된다. 세상에 쓰레기 문제에 진심인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요. 더 놀라운 점은 쓰레기 투어 참가자 중 여럿이 작년 한 해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쓰레기 여행을 뽑았다는 점이다. 거대한 인형뽑기 기계처럼 생긴 크레인이 3t의 쓰레기를 허공으로 들어올려 터뜨리는 장면, 매립지에서 발생한 메탄을 모으는 미어캣처럼 생긴 굴뚝, 그리고 끊임없이 컨베이어 벨트로 쏟아지던 쓰레기들.

시민들에게 자신의 속살을 내보여준 시설은 최선을 다해 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이었다. 자원회수시설에서는 쓰레기가 잘 타도록 종량제 봉투를 터트려 연소실에 넣는데, 이때 발생하는 열로 전기와 온수를 생산하고 오염물질은 최대한 제거해 배출한다. 수도권매립지의 경우 저 멀리 보이는 곳에서 쓰레기를 파묻어도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고 매립지는 야생화와 억새가 일렁이는 공원이 되어 있었다. 쓰레기와 음식물 폐수에서 모은 메탄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매립지에는 폐수를 정화한 물을 뿌린다. 이 기술에 감화된 해외 공무원들이 계속 방문하고 홍콩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라는 말을 들을 때는 가슴에서 ‘국뽕’이 차오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 크기라는 매립지의 드넓은 땅이 원래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재 서울은 소각장이 부족해 신규 소각장을 지어야 하고 수도권매립지는 빠르게 고갈돼 대체 매립지를 찾는 중이다. 결국 최첨단 기술과 거대한 규모를 한 방에 태워버릴 만큼 우리가 너무 많은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는 사실만이 재처럼 남는다.

이들 처리시설은 마지막까지 쓰레기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 타고 남은 재로 벽돌을 만들고,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와 사료를 만들고, 스티로폼을 압축해 잉고트라는 소재로 재활용한다. 국내에서 이 재활용품을 사용하는 곳이 없다. 이들은 생산이 중단되거나 베트남 양계농장이나 아프리카 공장에 보내진다.

한 쓰레기 여행 참가자께서 일본에서는 초등학생 때 소각장을 방문한다며, 자신도 그때 보고 들은 걸 계속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 그 기억이 이 여행으로 이끈 힘이 아닐까. 우리 동네의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함께 보고 느끼고 이야기하면 좋겠다. 올해도 쓰레기 여행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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