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단폭격과 V2로 온 천지가 난리다

이기수 논설위원

마음 심(心). 갑골문의 이 한자는 심장의 형상을 본떴다. 옛사람들은 감정은 머리가 아닌 심장에서 나오는 걸로 알았다 한다. 생각·감정·의지와 중심도 뜻하는 한자는 그렇게 발원됐다. 언제부턴가 그 심자에 대통령·권력자의 성이 붙으면 나라를 휘젓는 큰 힘이 됐다. 박통·전통이 귀에 익은 유신·5공을 지나 1987년 직선 대통령이 등장한 후일 게다. 제왕적 총재로 산 노심과 세 김심이 있었고, 당권·대권이 분리된 또 한번의 노심과 이심·박심·문심 뒤로 이제 윤심이 입에 오른다.

이기수 논설위원

이기수 논설위원

“윤단폭격이잖아.” “융단(絨緞)이 아니고 윤단?” “그렇지, 윤석열의 윤단(尹團).” 그제 교수 친구 말에 동석자 넷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알고 있었다. “당무 개입하지 않겠다” “윤핵관은 실체 없다”는 대통령 말은 식언이 된 것을…. 윤핵관이 전당대회에서 완장 찬 건 석 달 전 대통령 관저에서 여당 지도부보다 먼저 부부 만찬을 한 뒤인 것도…. 이준석 쳐내고 유승민·나경원 주저앉히고 안철수를 “적”이라 한 윤심은 김기현이고, 그럴수록 김기현은 ‘푸들’ 이미지만 커진다는 것도…. 윤석열을 찍었던 이 있고 국민의힘 당원은 없는 자리, 여당 전대를 보는 역외자 눈은 매섭고 차가웠다.

왜 그들만의 전대로 치닫고 있을까. 애당초 민심 1위(유승민)·당심 1위(나경원)·대선 주자(안철수)는 눈 밖에 둔 윤심 탓이 크다. ‘윤안연대’란 말로, 대통령을 전대에 끌어들였다는 안철수 공격은 편파적이다. 안철수가 대통령을 탄핵할 거라는 김기현이나 ‘윤심타령’하는 윤핵관은 놔두고 있으니까…. 대통령이 당대표와 동격인지 따지는 것도 부질없다. 대선으로 직행한 정치 초보자의 자격지심·불안 아니면 상명하복에 익숙한 ‘검사 대통령’의 품 좁은 말로 들린다. 여당 리더·잠룡과 대통령은 집권 초·중·종반에 위치·역할·힘이 다른 동반자일 뿐이다. 안철수에겐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는 대통령실 함구령까지 떨어졌다. 어느 것도 민주적 지도자가 취할 품새가 아니다.

대통령실이 가타부타 않는 ‘탈당 논쟁’도 화약고로 남았다. 노태우부터 YS·DJ, 노무현·박근혜까지 대한민국엔 탈당한 대통령이 많다. 모두 직접 만든 당을 임기 말에 떠났다. 그래도 이렇게 집권 1년차에 탈당 얘기가 나와 여당 전대를 옥죈 적은 없었다. 왕조시대라면, 석고대죄하라는 양위 소동·겁박과 닮았다. 힘이 달리는 왕자를 편애하는 군왕처럼 보인다. 부처 업무보고 끝에 준비한 원고 없이 ‘28분 훈화’를 하고, 장관이 발표한 걸 바로 뒤집는 ‘윤허정치’도 반복된다. 가히, 사극에서 본 풍경들이다.

매사 입길에 오르는 이는 또 있다. 김건희 여사다. 설 직전 대구 서문시장에서 시끌벅적 활보한 것도, 여당 전대 앞에 여성의원 전원을 관저에 불러 밥 먹은 것도 ‘정치 개입’ 시비를 불렀다. 대선 때 벼랑에 몰려 공언한 ‘조용한 내조’와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 부인이 할 게 많더라”는 윤 대통령 엄호에도 시끄러운 이유는 여럿이다. 약속 뒤집으며 말 한마디 없고, 공식 지원조직도 없고, 공소시효 남아 있다고 판결 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여태껏 조사 한번 없어 ‘치외법권’ 딱지가 붙었다. 특검과 오지랖 넓은 천공 얘기도 재점화됐다. 역대 대통령은 ‘VIP’로 불렸다. 지금 용산 대통령실에선 대통령을 ‘V1’, 김 여사를 ‘V2’로 나눠 부르고, 이 속칭은 여당까지 번졌다. V2의 출몰과 독자 행사가 잦고, 부속실에 닿는 관저 지시가 V1인지 V2인지 헷갈려 생기는 뒷말도 들린다.

윤 대통령 국정지지율(한국갤럽)이 2월 둘째주 32%를 찍었다. 2주 연속 2%포인트씩 내렸다. 적색 신호다. 여당이 전대 치를 땐 보통 대통령 지지율도 오른다. 여당 지지층이 여론조사에 더 응답하기 때문이다. 그 컨벤션 효과에서 윤 대통령은 빠졌다. 정당민주주의 짓밟고, 먹고살기 각박하다는 아우성도 커져가는 후과일 게다. 민생과 민심을 잃으면, 어떤 권력자도 국정도 바로 설 수 없다.

대통령은 뻔히 읽히는 무리수를 왜 두고 또 둘까. 내년 4월 총선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공천권을 휘두르고, 대통령 얼굴로 선거 치르고, ‘윤석열당’으로 객토하고, 여대야소로 바꿔볼 심산일 게다. 뜻대로 될까. 세상엔 이런 무소불위 대통령이 국회까지 쥐락펴락하는 시대를 걱정하는 소리도 같이 쌓인다. 집권 1년이 숫자로 나올 5월부터는 대통령이 전 정부 탓, 야당 탓, 언론 탓만 할 수도 없다. 온 천지가 윤단폭격과 V2, 권력 눈치 보는 검찰 수사로 야단법석이다. 그들이 탄 ‘윤석열차’가 거칠게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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