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1년, 정순신만 괴물입니까

이기수 논설위원
[이기수 칼럼] 윤석열의 1년, 정순신만 괴물입니까

2022년 3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 회견에서 집권 각오를 내놨다. “오직 국민 뜻에 따르겠다.” “진보와 보수의 대한민국은 따로 없을 거다.” “성별로 갈라치기 한 적 없다.”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 잘못은 솔직하게 고백하겠다.” 지켰는가. 아니거나 아직이다. 돌이켜보면, 지켜진 문답도 있다. “(대장동 수사?) 그런 모든 문제는 시스템에 의해서 하는 게 맞지 않겠나.”

이기수 논설위원

이기수 논설위원

2023년 3월10일, 대통령 국정지지율(한국갤럽)은 1주 새 2%포인트 내린 34%를 찍었다. 피해자가 거부한 ‘일제 강제동원 3자 변제안’과 MZ세대도 반대한 ‘주69시간 노동제’의 후폭풍이다. 주69시간제는 대통령의 보완 지시가 떨어졌지만, 대선 때 “120시간이라도…” 했던 건 그였다. 대한민국 정치는 주 단위로 호흡한다고 한다. 여론조사 때문일 게다. 하나, 대통령의 갤럽 숫자는 9개월째 23~37% 벽에 갇혀 있다. 여론지표상 소수정부다. 수도권·중도층·2050이 비토하는 그 무엇, 적폐와 의구심과 울화가 쌓인 것이다.

#만사검통의 나라 = “클린스만(새 축구대표팀 감독) 자리도 공 잘 차는 검사가 오나 했다.” 페이스북에서 본 조소(嘲笑)가 꽤 많이 돌았다. 검사가 벌써 20여개 정부조직의 70여개 고위직을 꿰찼단다. 법률가가 널리 포진한 게 법치국가라 한 대통령 말이 현실이 됐다. 매섭게들 썼다. 보수·진보 논객 가릴 것 없이…. 학폭 아들에게 법기술을 쓴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낙마는 시한폭탄이 터진 거라고…. 검찰이 경찰까지 거머쥐려다 체한 거라고…. 대통령의 낙점이니 인사검증은 설렁설렁 했을 거라고…. 정순신만 괴물인가? 내부의 거악엔 관대하고, 끼리끼리 끌어주고, 무오류의 오만에 젖은 ‘만사검통(萬事檢通)’의 정신세계가 참사로 터졌을 뿐이다. 직접수사권을 되찾은 검사는 예나 지금이나 힘이 세다. 저잣거리엔 검사들이 ‘떡검’(뇌물)·‘색검’(성비위)보다 더 듣기 싫어한다는 ‘개검’(정치검사) 소리가 차오른다. 김건희 여사와 칼 치켜든 검사들만 태워 달리는 카툰 ‘윤석열차’가 꿰뚫어본 대로다.

#뒤로 가는 ‘윤석열 숫자’ = 작년 소비자물가는 5.1% 뛰고, 사교육비는 그 두 배(10.8%) 올랐다. 작년 4분기에 시작된 역성장(-0.4%)은 올 1분기로 이어지고, 무역은 12개월째 적자다. 5년간 ‘60조 부자감세’라는데, 500대 기업의 55%는 올해 사람을 뽑지 않는다. 청년은 58%가 부모와 살고, 34%가 ‘번아웃’을 경험했단다. 국민 19%는 도움 청할 이 없는 사회적 고립자라고 했다. 잿빛 숫자만 넘치고, 사회는 각자도생하고, 가족은 돌봄·재생산을 멈췄다. 그 총합이 합계출산율 0.78일 게다. 먹거리 많고 안전한 곳에서 새끼 낳는 동물과 사람이 다를 리 없다. 외환위기 때처럼, 정부·기업만 살아나오고 국민은 눈물짓는 코로나19 끝이어선 안 된다. 그 희망을 보지 못한 1년이다.

#사라진 사과·협치 = 대통령의 사과는 전환점이다. 문책은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하나, 윤 대통령은 야당을 ‘이XX들’이라 하고, 이태원 참사·정순신 사태 뒤에도 사과·문책이 없었다. “소수의 이권 카르텔이 권력을 사유화했다”고 문재인 정부를 찌른 말은 이제 그를 향한다. 정치도 1년째 서 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는 만나지 않고, 국회는 삿대질과 힘대결만 한다. 총선 뒤 출구가 열릴까. 개헌선(200석)·패스트트랙선(180석)을 넘긴 당이 없으면 국회는 협치 룰을 따라야 한다. 대통령과 여야가 민생 경쟁하는 걸 본 지 참 오래됐다.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작년 5월 윤 대통령이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방한 선물로 받아 집무실에 놓아둔 팻말이다. 일본과의 강제동원 협상을 ‘결단’이라 한 대통령의 유튜브 쇼츠에 이 팻말이 등장했다. 대통령은 숲속 갈림길에서 한쪽을 택한 시인 프로스트를 떠올렸을지 모르겠다. 반대로, 김구 선생이라면 “눈 내린 들판을 어지러이 걷지 말라”는 시를 읊어줬을 듯싶다.

매달 넷째주 토요 휴무(2002년)→주5일(2004년)→주52시간(2018년)으로 한 발씩 내디뎌온 세상이 ‘과로사회’로 돌아갈지, 위안부 합의 8년 만에 또 굴욕을 맛볼지, 미사일·전략무기 날아다니는 한반도가 안녕할지 맘 졸이는 봄이다. 잘못 끼운 첫 단추는 지난한 역사가 된다. 정순신 사태를 문책 안 한 대통령이 강제동원만 책임지겠다는 것도 반쪽이다. 누가 대통령을 겸손케 하고 신중케 하고 협치하게 할 수 있을까. 국민밖에 없다. 윤석열의 1년, 당신이 꿈꾼 나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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