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의 신께서 말씀하시니

유명 학원강사의 인생조언을 의지와 무관하게 들을 때가 있다. 스타강사의 팩트폭격 따위로 이름 붙은 짧은 동영상이다. 동기부여, 자기계발 등의 키워드를 검색한 적이 없어도 어떻게든 만난다.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누구에게나 유용하다고 여기는 보편적 알고리즘인지, 비판받을 지점이 없다고 인공지능이 인식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연설은 시시때때로 다가온다.

구성은 동일하다. 마이크를 든 깔끔한 옷차림의 사람이 칠판 앞에 등장한다. 메시지는 흡사하다. 사례는 달라도, 한 번 사는 인생 모든 걸 걸어보라는 결론이다. 동반되는 에너지도 다르지 않다. 어질어질해질 정도로 다그친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혼낸다. 훈계의 근거는 “자신이 살아보니 알겠더라”는 진부한 추임새로 설명되지만, 부자인 그들을 꼰대라 하는 사람은 없다. 신(神)이 된 이들의 입에선 빈약한 강론이 흐른다. 국어, 영어, 수학 문제집 어디에도 사회의 불평등을 이해할 수 있는 문법이나 공식 하나 없지만 강사들은 ‘노력하면 다 된다’면서 으르렁거린다. 심지어 사회 강사가 사회 탓하지 말라는데, 게다가 당당하다. 사교육의 신들이 일치단결하니 ‘모든 이들의 조건은 같다’는 이상한 평등론이 확장되고, 그 크기만큼 세상의 불평등은 개인의 몫이 된다.

좋은 의도였을 거다.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 중 한 명이라도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거다. 도움을 받은 한 명도 있을 거다. 인생사가 꼬일 대로 꼬이면, 자신의 삶이 사회의 부당함을 강력히 증명하더라도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자세로 살아가는 게 유일한 탈출구니까 말이다. 불평등의 피해자였던 사람이, 강사의 호통에 성적 올리고 그 계기로 성장과 성공이 이어졌다면 멋진 일이다. 그는 여기저기 자신의 멘토처럼 말하고 다니고 싶을 거다. 이해한다.

문제는, 나약한 사람이나 세상 탓을 하는 거라고 ‘느껴지도록’ 밑밥을 까는 스타강사의 철학을 그 사람만 전교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환경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이들도, 마찬가지로 세상을 이해한다. 강의실에서 자기들끼리라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하지만 이들은 한때의 인생 모토를 아무 곳에서나 보편적 법칙처럼 설교한다. 게다가 무례한데, 강사들이 성공이라는 엄청난 자신감에서 오는 세상을 향한 냉소적인 태도만을 그대로 흉내 내는 꼴이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걸라는 강사들의 덕담은 모든 것을 걸 필요가 없었던 이들이 누군가를 향해 ‘인생을 대충 사는 인간들은 실패하기 마련’이라면서 조롱하는 연료로 전환된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착하게 살라는 게 아니라, 부자가 겸손하지 않으면 세상에 나쁜 철학이 진리처럼 부유하기 때문이다.

좋은 사회란, 바늘구멍을 통과한 ‘누구에게만’ 주목해선 만들어지지 않는다. 바늘구멍을 넓힐 지혜, 한쪽을 개천으로 내버려 두지 않는 연대, 설사 개천일지라도 그게 개인의 굴레가 되지 않도록 편견을 깨야만 가능하다. 돈을 많이 번다고 세상의 복잡함을 단순 명료하게 설명할 줄 아는 현자가 되는 건 아닌데, 한국에선 된다. 그래서 이 글을 접하고 “그냥 부럽다고 해라”라면서 빈정거릴 이들이 많을 거다. 인생의 모든 것을 건 사고력은 이리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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