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서점에 와 본 분들이 계실까요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작년에 존경하는 C선생님에게 함께 글쓰기 강연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모 대기업 사원들을 대상으로 3회차. 그가 사회를 보고 내가 강의 후 함께 대담하는 방식으로 하자고 했다. 너무나 감사해서 아, 네, 선생님 물론입니다, 하고 두 손으로 전화를 받을 지경이었다. 강연비만 해도 내가 그동안 받아온 액수의 배는 되는 것이었으나 우선 그와 함께 무엇을 한다는 자체로 기뻤다. 분명 무언가 배우는 게 있을 테니까.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그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 사원들 앞에 섰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아니었다. 다만 C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김래원이 나온 어느 영화에서 엑스트라가 뱉은 명대사처럼 ‘그래 C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거야. 할 수 있어’ 하는 마음이 되었던 것이다. C는 먼저 사회를 보는 자신에 대해 소개했다. 그러면서 “저의 서점에 와 본 분들이 여기 계실까요?” 하고 물었다. 그는 서점을 운영한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사람들은 눈치를 보다가 수십명 중 단 한 명만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들도 민망하고 나도 민망하고, 누구보다도 민망한 사람은 C일 것이었다. 선생님, 사람들은 서점에 잘 가지 않아요, 선생님이 가장 잘 아시잖아요, 그런 건 왜 물어 보셨어요.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C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저의 서점에 와야 할 분들이 이렇게나 많네요. 기쁩니다.” 그 순간 강의장의 공기가 바뀌었다. 그래 가 보면 되지 뭐, 하는 안도감. 그 한마디만으로 그곳의 모든 부정의 기운이 긍정으로 바뀐 것이다. 무슨 마법을 보는 듯해서 잠시 멍해져 있는 동안 그가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나도 강연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많이 물었다. 혹시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에 대해서 아시느냐고. 몇년 전 경향신문의 지면을 통해서 많이 알려졌고 작년에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하면서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름이 같은 사람에게 항공권을 양도하면서 생긴 선한 영향력의 힘. 언젠가부터 몹쓸 자신감이 생긴 나는 이 경험을 말하기 전에 묻곤 했다. “혹시, 이것에 대해 들어본 분들이 계실까요?” 신문이나 방송에서 봤다고, 혹은 나의 책을 읽었다고 손을 들어주는 분들이 있으면 기뻤다. 그런데 언젠가 40여명의 사람들 중 한두 명만이 손을 든 날이 있었다. 나는 그때 민망함을 잘 숨기지 못했던 것 같고, 다시는 묻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러나 C의 말처럼 했다면 어떨까. “아직 저의 이야기를 들을 분들이 이렇게나 많네요. 기쁩니다.”

나를 아는 호의적인 사람들만 선별적으로 만나 말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나를 모르는, 호의도 적의도 없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어렵지만 멋진 일이다. 나에게 1시간의 시간을 주면 당신들을 나의 서점에 반드시 오게 만들겠다, 나의 책을 찾아 읽게 만들겠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을 기억하게 만들겠다, 하는 마음, 혹은 기회.

C와 세 번의 글쓰기 강연을 함께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단 하나의 말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고 그래서 그의 조곤조곤한 말은 정확하고 선명하게 문제의 본질을 향했다. 마지막 강연이 끝나고 함께 점심을 먹으며 그가 말했다. 자신의 책방에서 정기적인 글쓰기 강연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그런 그에게 무조건 함께하겠노라고 답했고 지금 4기째 글쓰기 클래스를 운영 중이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혹시 나의 글을 본 적이 있느냐고. 있다고 하면 깊은 감사를, 처음이었다면 이렇게 나의 글을 읽어주어 기쁘다고 다른 종류의 감사를 전하고프다. 어느 상황에서든 나와 상대방을 부정의 늪에서 견인해 낼 만한 선명한 말들이 있을 것이다. 작가이기 전에 한 어른으로서 그러한 글과 말을, 한 삶을 배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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