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청년 예술의전당의 꿈과 현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한국 예술 역사에서 예술의전당(Seoul Arts Center) 개관은 분수령이 된다. 이유는 예술에서 경영이라는 개념이 전당과 함께 본격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3만5000달러 경제에 걸맞은 문화 선진국의 견인차 역할이 주어져 있다. 전당은 1988년 2월15일 개관했으니 올해로 35세이다. 88올림픽과 때를 같이하지만 전당을 꿈꾸고 설계·건축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5·18민주화운동(1980), 6·29선언(1987)과 같은 정치격변 속에 전당이라는 예술의 신전이 태동했다. 정치만큼이나 예술지형도 요동쳤다. 전당은 1988년 2월15일 1차로 음악당·서예관을 개관하였고, 1990년 2차로 미술관·예술자료관, 1993년 3차로 오페라극장을 열었다. 퐁피두나 링컨센터, 로열오페라하우스와 같은 세계 굴지의 예술센터를 모델로 하였지만 전시와 공연의 양 날개로 난다는 점에서 전당만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전당 35년의 경영 성과는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예술의 일상화를 빠르게 정착시켜가고 있다는 점에 모아진다. 전시 공연의 횟수나 관객만 해도 2022년 기준으로 1934건에 168만2600명을 헤아린다. 이것은 개관 당시와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다. 하지만 개선점도 눈에 띈다. 전당 경영은 정치변화의 판박이다. 그간 기관장이 16차례나 바뀌었다. 2년에 한 번꼴인데, 제5공화국을 시작으로 2023년 지금까지 대통령이 9번 바뀌었으니 그 두 배다. 이 중 문화부 관료가 9명이었고, 나머지는 언론인·예술인 등이다.

서구의 경우 전문예술경영인에다 10년의 임기도 짧은 것이 예술기관의 수장 자리이다. 근현대 100년이 넘도록 한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서구모델로 전환되었지만 이것만은 반대로 가고 있다. 프로그램은 기획 중심에서 외부기획사와의 공동주최나 대관의 증가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5년 10년을 내다보는 지속 가능한, 그것도 ‘전시+공연’이 아닌 ‘전시×공연’이라는, 전당만의 특화된 월드클래스 축제 프로그램 자체 기획은 꿈도 꿀 수 없다. 당연히 그것을 추진할 기획전문 인력의 양성이나 설 자리도 없다. 제대로 된 자체 기획이 3~5년 걸린다고 할 때 평균 2년이 멀다하고 바뀌는 기관장 체제에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개관 당시만 해도 세계 10대 예술센터에 걸맞은 전문요원 100명 양성이 추진되었지만 지금은 유야무야되었다.

예술은 극장이나 뮤지엄에서 작품과 관객의 대화로 완성된다. 그 매개자는 바로 임프레사리오나 큐레이터와 같은 예술기획자들이다. 이들을 통해 동서고금의 예술은 서로 교통하고, 또 차원을 달리하면서 시공을 초월하여 재해석되고 재창조된다. 한국 예술의 역사에서 이런 기획자의 역할이 작가와 하드웨어만큼이나 중요하게 본격 대두된 시기가 전당이 만들어지면서부터다. 특히 동과 서, 전통과 현대를 ‘공연×전시’ 일체로 녹여낸 프로그램으로 승부하는 예술 용광로인 아츠콤플렉스(Arts complex)가 전당의 미션이고 갈 길이다. 여기에 걸맞은 ‘SAC축제’의 발명은 궁극적으로 소리(음악당)×몸(오페라극장)×그림(미술관)×서(서예박물관)에서 찾아지고, 그 책임자는 기획자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로 신을 시중드는 학예의 신 뮤즈와 같은 존재다. 이 점에서 전당은 국립극장이나 국립현대미술관, 국립박물관과는 같으면서도 당연히 다르다.

해마다 10월이면 돌아오는 국정감사 단골메뉴는 ‘왜 전당은 제대로 된 자체 기획이 없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대답은 ‘앞으로 잘하겠다’는 말로 끝난다. 혹여 후속조치가 실천될라 치면 기관장은 교체되기 일쑤다. 어느 누구 책임도 없이 사반세기가 넘도록 똑같은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고 있다. 전당은 명색이 세계 10대 예술센터이지만 프로그램으로는 여느 문예회관과 다를 바 없게 되어가고 있다.

35년 전 전당의 모델이었던 퐁피두센터가 기획력과 컬렉션을 무기로 2025년에 직접 한국분관을 63빌딩에 연다고 한다. 선진국은 돈으로만 되지 않는다. 예술로 완성된다. ‘뉴욕 전당’ ‘파리 전당’을 35세 청년 전당이 꿈꾸고 실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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