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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이용욱 정치에디터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에게서 좋은 정치가 나온다. 한때 정치인들의 이력, 진보냐 보수냐를 좋은 정치를 가르는 기준으로 여겼다. 가령 보수 정치인은 기득권에 찌든 수구세력이며, 민주화운동을 했던 진보 정치인은 기성 정치인보다 나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의도 국회를 지켜본 결과, 좋은 정치인을 경력이나 소속 정당으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좋은 정치인들은 한결같음, 타인에 대한 배려, 말의 품격, 책임감 등을 지녔다. 타고난 품성도 있겠지만, 공인 의식을 갖고 스스로 단련한 결과라고 본다.

이용욱 정치에디터

이용욱 정치에디터

좋은 정치인 하면 기억나는 사람이 몇 있지만, 오해를 부를 수 있으니 정계를 떠난 사람들만 언급해보겠다. 더불어민주당 쪽에선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이 떠오른다. ‘민주화운동의 대부’라는 아우라를 제외하고라도, 그에게서는 품격이 느껴졌다. 깊은 대화를 나눠본 것은 아니지만, 사려 깊고 진지한 언행을 지켜보며 자주 감명을 받았다. 보수 정치인 중에는 김용갑 전 의원을 꼽고 싶다. 군인 출신의 꼴통 정치인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적으로 만나본 김 전 의원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있었다. 조승수 전 민주노동당 의원이 2005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 상실 위기에 놓였을 때 김 전 의원이 조 전 의원에 대한 재판부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에 서명한 일화는 유명하다.

현재 정치가 망가진 것도 좋은 정치인이 없어서다. 나쁜 사람들만 넘쳐나는데, 대화와 타협의 공간이 열리겠는가. 여권을 보자. 윤석열 대통령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공정과 상식을 말하더니, 집권 후 내 편을 감싼다. 좋은 정치인의 제1덕목인 한결같음과 거리가 멀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을 홀대하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결단 운운하며 제3자 변제안을 거칠게 밀어붙인 것을 보면 책임감과 배려도 부족하다. ‘바이든·날리면’ 등 계속되는 설화를 보면 말의 품격을 기대하기도 힘들 것 같다.

윤핵관들은 어떤가. 이들은 애초부터 역량을 평가받던 정치인이 아니었다. 윤석열이라는 권력의 중심에 불나방처럼 모여든, 권력 이동에 눈치 빠른 사람들로 여권 내에서도 평가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인 장제원 의원이 상임위 중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을 향해 “어디서 배워먹은 거냐” “들어”라고 반말 섞인 호통을 한 것은 사람의 품격을 짐작게 한다. 김재원 최고위원의 약삭빠름은 그가 박근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을 때부터 봐왔다. 이준석 전 대표는 이들에 비해 나은가. 비아냥과 갈라치기는 좋은 정치인의 특성이 아니다.

민주당도 다를 게 없다. 이재명 대표는 야권 내에서도 좋은 사람이라는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것 같다. 대선에 패한 뒤 보궐선거에 나서고 대표까지 출마한 것은, 야당 대표직을 방탄으로 삼겠다는 이기적 정치행보였다. 윤석열 검찰의 수사가 지나친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이 대표가 민주당 전체를 끌어들이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가 폭주할 수 있는 이면에는 이 대표가 좋은 정치인이라는 믿음을 얻지 못하는 현실이 작용하고 있다. 야당 주류인 586은 기득권이 됐다. 이들이 의원이 되고, 선수가 쌓이면서 나쁘게 변해가는 모습을 적잖이 지켜봤다.

한국영화 <증인>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자폐아 소녀 지우는 자신을 살인사건의 증인으로 세우려는 로펌 변호사 순호에게 묻는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민변에서 공익소송 등을 하다 돈을 좇아 대형 로펌에 들어간 순호는 명쾌하게 답하지 못한다. 올바르다고 믿었던 삶의 궤도에서 이탈한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선뜻 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를 본 뒤 ‘나는 좋은 사람인가’를 되물었다. 악한 사람은 되지 말자, 최소한 도리는 지키면서 살자는 생각을 했다.

여야 정치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이 말에 움찔한다면 그래도 일말의 양심과 염치가 남아 있는 것일 터다. 때 탈 만큼 타고 권력의 단맛을 본 정치인들의 개과천선을 바라는 것은 윤 대통령이 폭탄주를 끊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일지 모른다. 그래도 최악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을 과시하고, 상대를 비판하기 앞서 ‘나는 좋은 사람인가’를 정치인들이 자문했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정치의 풍경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인은 스펙 좋은 사람이 아니라 됨됨이가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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