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정부 1년

박영환 정치부장

윤석열 대통령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을까. 대통령이 되어 뭘 하려고 했을까.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된 지 곧 1년이 된다. 윤석열 정부 1년을 평가하려니 의문부터 생겼다. 두 번도 못하는 5년 단임제 대통령이고 임기의 5분의 1이 지났는데도 뭘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박영환 정치부장

박영환 정치부장

2021년 9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토론회. 유승민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물었다. “대통령이 왜 되려고 하나.” 윤 후보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공정과 상식을 지키기 위해 살아 있는 권력과 싸우는 모습을 보고 무너진 법치와 상식을 바로 세워달라는 (국민의) 부름을 제가 확실히 이행할 수 있을 것 같고….” 국민이 원한다니 해보겠다는 취지다. 내용도 대통령보다는 검찰총장이 되려는 이유에 더 가깝다. 문재인 정부의 ‘불공정’과 싸우며 대중의 인기를 얻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대통령이 되어서 뭘 하려는지에 대한 정립된 인식은 안 보였다.

이때까지도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는지 모른다. 대중은 문재인 정권과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으로 정치권 밖에 있던 윤석열이란 인물을 지지했으니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평생 검사 생활만 해온 사람이 대통령이란 새로운 소명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벌써 1년이 지났음에도 소명의식은 여전히 안 보인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이 있다. 코로나19 극복부터 좋은 일자리 창출, 출산부터 양육까지 국가책임 강화 등이다. 지난 1년간 윤 대통령이 이 공약들을 이행하기 위해 법안을 만들고 국회와 조율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당장 출산율 제고 공약을 보면 2022년 건강보험법을 개정하고 2023년 시행에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식언이 됐다. 연일 강조하는 3대 개혁(노동·연금·교육 개혁)도 마찬가지다. 근로시간제 개편은 주 최대 69시간 근무라는 헛발질 한 번에 흔들거리더니 기약 없이 표류하고 있다. 연금개혁은 첫발도 못 디뎠고, 교육개혁도 큰 그림이 뭔지 아는 이들이 없다. 수많은 이해당사자가 있는데 이들과의 대화가 닫혀 있으니 일이 진전될 턱이 없다. 그러니 학교폭력, 전세사기, 산불 등 일이 터질 때마다 “해결하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윤 대통령의 즉자적 대응만 보인다.

현재 국회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69석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법을 바꾸려면 야당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와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고 만날 생각도 없다. 4·19 기념사에서까지 야당을 사기꾼이라고 공격한다. 협치라는 말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이 정도면 국회를 통해야 하는 일, 개혁 법안 통과 등은 최소한 내년 총선까지는 윤 대통령의 목표에 없다고 봐야 한다. 다양한 매체와 만나 국정의제를 설명하고 국민적 동의를 구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 집권 2년을 그냥 보내겠다는 의미다. 게다가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이긴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긴다 해도 집권 후반기로 접어든 지지율 낮은 대통령의 말에 얼마나 힘이 실릴지는 의문이다.

물론 윤 대통령이 노력하는 분야도 있다. 대통령과 장관 재량권인 시행령을 통해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을 추진하고, 국회 승인이 필요 없는 대외정책에서 마음껏 결단력을 과시하고 있다. 미·일 동맹 체제에 더욱 밀접하게 편입되기 위해 일본에는 과거사 문제를 선제적으로 양보했고,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악화까지 감수하며 미국 편들기에 앞장섰다. 북한 핵포기 정책은 접었고 핵 대 핵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집권 2년째에 접어들면 윤 대통령은 달라질까. 쉽지 않아 보인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다수의 힘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반지성주의를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다수의 시민을 소크라테스를 사형시킨 우매한 민중으로 여기는 듯하다. 스승의 죽음을 보며 플라톤은 민주정을 불신하고 철학자가 통치하는 국가를 희망했다. 윤 대통령도 철인정치를, 어쩌면 철학자 대신 검사에 의한 통치를 생각하는지 모른다. 사무실만 서초동에서 용산으로 옮겼을 뿐 윤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은 검찰총장 때와 달라진 게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절반도 안 되는 지지를 받고 당선된 대통령이 반대편 절반을 무시하면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러다 윤 대통령은 한도를 모르는 특수활동비로 측근들과 폭탄주 회식을 즐긴 이미지로만 남을지 모른다. ‘회식정부(會食政府)’란 이름표가 붙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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