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이 열린 4월26일. 한낮의 백악관 로즈가든 위로 직사광선이 내리쬐고 있었다. 짐작대로 미국 기자들은 재선 도전을 선언한 미국 역대 최고령 대통령의 첫 공식 행보라는 점에 더 주목했다.
한 미국 기자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선거를 의식해 한국 등 동맹에 피해를 야기하는 대중국 반도체 규제를 추진하는 것 아닌가’라는 취지로 질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법은) 미국에서 상당한 경제성장을 만들어내고 있고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있다. 한국에도 윈윈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답변이었다. 반도체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이 외국 기업들에 비용을 전가한다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미국은 이렇게 응수해왔다.
다만 이번에는 동맹국 정상이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반도체 등에서 미·중 택일을 강요하는 바이든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에 직격탄을 맞은 나라였다. 게다가 그 정상은 불과 두어 시간 전 이렇게 선언했다. “한·미 동맹은 이익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거래관계가 아닙니다. 한·미 동맹은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가치동맹입니다. 그러므로 한·미 동맹은 정의로운 동맹입니다.”
시급한 국가안보·경제 이익 대변에 앞장서는 초강대국 미국 대통령과 미사여구로 가득한 ‘가치동맹론’을 설파하는 한국 대통령. 어쩐지 처지가 뒤바뀐 듯한 풍경이었다.
이번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도 미국이 모든 방면에서 자국의 이익과 목소리를 관철하려 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한·미·일 협력 심화, 경제적 강압 공동대응, 공급망 안보·수출통제·해외투자 심사 협력, 심지어 오커스(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에 대한 한국 대통령의 지지 천명까지, 한국을 최우선 과제인 대중국 전선 구축에 완전히 끌어들였다.
워싱턴 선언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 입장에서 핵협의그룹(NCG) 설치, 전략핵잠수함(SSBN) 등 전략자산 정기 전개 등은 분명 이전보다 진전된 결과다. 그런데 미국은 강화된 확장억제 제공 약속과 함께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상 의무를 지속 준수할 것을 명시했다. 한국 내 독자 핵무장론에 제동을 걸어 역내 핵확산 우려를 차단하려는 의지의 반영이다. 북한뿐 아니라 NPT상 핵보유국 중국·러시아까지 염두에 두고 국제 비확산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미국의 이해가 걸려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가치외교’의 유래는 미국에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민주당 정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다. 그러나 미국 내 민주주의·인권 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시험대에 오른다. 또 가치와 이익이 부딪칠 때 미국은 대개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해왔다.
그래서 외람되지만 대통령의 ‘동맹론’을 감히 다음과 같이 첨삭해보고자 한다. “한·미 동맹은 때로는 이익이 충돌하더라도 신뢰관계를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한·미 동맹은 보편가치와 규범을 존중하며 글로벌 평화·번영을 실현하려는 동맹입니다.”
그리고 ‘정의로운 동맹’이란 수식어는 과감히 삭제할 것을 권한다. 동맹은 물론 어떤 개인과 집단, 사회, 국가 행위자도 그 자체로 정의로운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