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열 살, 일곱 살, 두 아이를 나는 “김대흔씨” “김린씨”라고 부른다.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니고 그들을 글로 써야 할 때만 그렇게 한다. 페이스북에 ‘부글부글 강릉일기’라는 제목으로 종종 아이들과의 일들을 쓰다 보면 나를 만난 사람들이 묻는다. 김대흔씨와 김린씨는 잘 있느냐고. 그들은 왜 아이들을 그렇게 호칭하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웃기려고 그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이들을 존중하기 위해 그러느냐는 사람도 있다. 사실 아이들과 멀어지고파서 일부러 쓰기 시작한 호칭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볼 때마다 여러 욕망이 찾아왔다. 잘 크면 좋겠다, 건강하면 좋겠다, 한글을 빨리 떼면 좋겠다, 구구단을 외우면 좋겠다, 받아쓰기를 잘하면 좋겠다, 어휘력이 높으면 좋겠다 등등. 그러다 보니 기대와 실망이 번갈아가며 찾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들에게 그러한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인가. 결국 부모와 아이는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한없이 가까워지다 못해 동일시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나의 욕망을 아이에게 대리시키는 게 괜찮은 것인가. 그건 서로를 불행하게 할 뿐이다. 나는 그들이 내 눈치를 보는 대신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어울리게 하는지 스스로 선택해 나가며 한 개인으로서 자립하기를 바란다.

경제활동을 해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을 경제적 자립, 물리적 자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이전에 정서적인 자립이 필요하다.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어떤 현상을 나로서 바라보고 사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 그건 어린 시절부터 행복한 부모를 보고 그 길을 따라가는 아이들에게 길러지는 힘이다. 정서적 자립을 하지 못한 사람이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된다고 해서, 그가 사회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가 자립한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사실 아이, 어린이, 아동의 발견이란 근대에 이르러 ‘개인’의 발견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어린이날의 탄생과 전후해, 그들 역시 하나의 인격체이며 일대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자아를 가진 존재라고 우리는 인식하게 됐다. 어린이날에 이르러 우리는 한 번 더 아이들을 돌아볼 기회를 가진다. 나의 아이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어린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날이다.

그러면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그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건 나의 일이 아닐 것이다. 부모가 스스로 한 개인으로서 행복하고, 그래서 아이가 자연스럽게 그 길을 지향하게 만드는 것, 대신 아이가 따라올 그 길의 돌을 몇 개 골라두어 조금은 덜 넘어지게 하는 것,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란 그런 것이다. 아이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읽되 자신이 원하는 문법으로 빨간줄을 그어 교정하려 하지 않는 일. 부모도 아이도 저마다의 언어로 자신의 삶을 써 나갈 때, 그리고 그 언어가 자연스럽게 닮아갈 때, 그 어느 존재보다도 멀면서도 가까운 하나의 공동체가 탄생한다.

내 글에서는 두 아이를 계속 김대흔씨와 김린씨라고 호칭하려고 한다. 이러한 호칭이 옳다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집집마다 아이를 부르는 그 집만의 고유한 언어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나의 아이들도 나에게 김민섭씨라고 스스럼없이 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물론 얼굴을 보며 그렇게 말하면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될 것 같지만, 적어도 그들의 인식과 글 속에서는 그런 개인으로 발견되고프다.

이번 어린이날엔 두 아이와 강릉시 어린이날 축제에 다녀왔다. 나는 얼마 전 문을 연 서점의 부스를 운영하느라 바빴으나 수백명의 어린이들에게 김대흔씨와 김린씨가 주운 바다유리를 엽서에 넣어 선물했다. 어린이날을 잘 지낸 모든 어린이들의 행복을, 그리고 정서적인 자립을 응원한다. 나도 나의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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