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축구’ 같은 정치

김민하 정치평론가

억울하다니 굳이 따져본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경우보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가상자산 투자가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더 악성인 이유는 뭘까?

김민하 정치평론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일단 경우가 다르다. 이준석 전 대표는 적어도 투자와 관련해선 ‘부정’을 의심할 만한 의혹을 받은 일이 없다. 김남국 의원은 ‘돈세탁설’부터 ‘로비설’까지 온갖 얘기를 다 듣고 있다. 그럼에도 ‘설’은 ‘설’일 뿐이니 억울하다는 얘기인데, 이것도 할 말 많지만 ‘설’에 대한 얘기는 접어두고 다시 얘기해보자.

2030세대의 민주당 지지율이 폭락을 했다는데, 이유가 있다. 이들은 문재인 정권이 가상자산 투자에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386들이 부동산 및 주식 투자로 크게 돈을 벌어놓고 다음 세대가 돈 벌 기회는 봉쇄했다”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평소 가난을 호소하던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가상자산 투자로 큰돈을 벌고 심지어 국회 상임위에 출석해서까지 거래에 열중했다니 더 화나는 것이다.

젊은 세대 일부가 생각하는 이런 ‘서사’는 사실관계만 따지자면 실제와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현실정치를 사실 여부로만 논할 수는 없다. 민주당을 향한 이들의 부정적 ‘인상’에는 정치적 실체가 있다는 거다.

김남국 의원의 행태는 오늘날 민주당 정치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김남국 의원은 조국 전 장관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자기 전에 교수님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한 일도 회자된다. 이를 보면 김남국 의원은 방향이 어찌됐든 ‘가치지향형 정치인’이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의 책임 소재를 논하는 자리에서조차 코인 거래의 타이밍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이제 김남국 의원은 ‘이익추구형 정치인’이다. ‘신념’은 ‘이익의 수단’이 된다. 민주당이 정권을 잃는 과정에서 벗지 못한 올가미가 바로 이것이다. ‘검찰개혁’이란 자신들을 향한 수사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여당의 공격에 제대로 반격도 못한 것을 떠올려 보라. 민주당은 ‘가치지향’의 승부라는 무기를 제거당한 상태다.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단호한 자세가 필요하다. 최소한 “국회의원이 저런 일에 연루되다니, 소속 당으로부터 크게 혼이 나겠구나” 하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일도 그렇고 ‘돈봉투 전당대회’ 의혹도 그렇고 당 지도부는 최대한 감싸보겠다는 듯한 태도다. 함정 안에 있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빠져나오려는 생각을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결국 상대방 실점에 기대는 정치만 남는데, 그게 먹히긴 할까?

대통령의 취임 1년 메시지는 ‘자화자찬’과 ‘전 정권 탓’이 전부였다. 이런 식의 발언은 ‘깨알같이’ 계속되고 있다. 국정운영에 자신감이 붙은 모양인데 대개 2년차가 그렇다. 대통령실 참모들이 외국 나가면 호평 일색인데 불충한(?) 국내 언론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식의 인식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러나 보수언론도 이젠 ‘전 정권 탓’ 그만하고 야당을 만나 민생을 논하라고 한다. 그런데도 이런다는 것은 작정하고 하는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내년 총선을 ‘안정’ 대 ‘심판’ 구도가 아니라 ‘전 정권 및 거대 야당 심판’ 대 ‘현 정권 심판’으로 치르겠다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 민주당이 정신을 차리고 유권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면 이런 전략이 먹힐 리 없다. 오히려 자의적이고 독단적이며 편협한 국정 운영이 심판론에 불을 붙일 거다. 그러나 민주당의 태도는 유권자들이 잠시 잊었던 정권교체의 이유를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과 여당이 원하는 그림 그대로다.

꼭 침대 축구로 일관하는 양팀의 경기를 보는 것 같다. 관객이 다 떠나도 90분 내내 누워 있다가 마지막에 한 골 넣으면 이긴다는 거다. 그러나 그것조차 유리한 것은 홈팀이다. 0 대 1로 진 다음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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