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길 걸을수록 고립될, 진보운동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진보운동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규탄, 심판, 퇴진을 구호로 내걸고 시민들을 광장과 거리로 부르고 있다. 더욱이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 중간평가로서 정치지형 재편의 기점이 된다. 이에 야당을 비롯해 양당 구도가 반영된 진영의 한 축으로서 진보운동 또한 정부·여당을 향한 공세를 높여갈 것이다. 진보운동은 지난 시기 거대한 대중운동을 떠올리며 대중의 분노를 모아내는 데 주력할 것이다. 이는 진보운동이 매 국면 택해왔던 ‘익숙한 길’이다. 기존의 진영논리에 입각하여 연합이나 전선을 형성하는 식이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진보운동에서 익숙한 길이 반복되는 이유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 속에서 연합으로 대응해온 관성 탓이 크다.

하지만 진보운동이 그 관성에서 오래도록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대중운동의 ‘승리적 서사’ 때문이다. 민주화의 열망이 달성돼 간다는 목적론적 흐름으로 각각의 국면이 서사로 엮이는데 오월 광주와 6월항쟁, 2016년 촛불운동은 핵심적이다. 그러면서 ‘광장’과 ‘촛불’은 하나의 신화로 굳어지기도 한다. 그 신화 속에서 시민은 불안과 공포를 겪다 각성한 존재로, 광장의 정치를 통해 해방을 경험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다중지성과 민주주의의 담지자로 선명히 그려진다. 하지만 이들이 그린 신화에는 대안 없음에 무력감·패배감을 느끼거나, 반복되는 광장이 주는 환멸에 발을 돌리는 시민은 등장하지 않는다. 운동이 설득하지 못한 바깥의 시민도 마찬가지다. 단순화된 진영 구도로 환원할 수 없는 주체들의 복잡성이나 양가적·역설적 성격 등은 누락된다. 또한 광장이 무엇 때문에, 어떤 과정으로 사그라들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 오직 주체의 역량만으로 모든 것을 달성했다는 자기확신은 강화되고 정세는 상대화되거나 단순화된다. 나아가 서사에 기입되지 못한 패배의 사건들은 망각된다. 잊혀진 1991년 5월 투쟁이 그렇다.

요컨대 진보운동은 승리적 서사를 내면화하면서 의지주의적 경향에 사로잡혔고, 성찰과 분석을 잃어버렸다. ‘분석의 부재와 의지의 과잉’(백승욱 교수)에 처한 진보운동은 연합적 사고에 기반해 대중을 동원하는 익숙한 길을 반복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의 후과는 진보 자체의 퇴행이다.

오늘날 진보운동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공세에 앞서 그동안 반복된 대결을 패배의 관점으로 곱씹고 재해석해야 한다. 이를테면 2016년 촛불광장에 대해 대중에 대한 찬양을 멀리하고 민주당으로의 수렴, 연합의 해체라는 결과론적 해석에 머무르지 않으면서 운동, 대중, 통치집단 등 행위주체 간 역량과 역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찰과 분석 없이 정부의 퇴행이나 부정적 힘에 기대 시민을 동원하는 진보운동은 아무것도 생성해내지 못할 것이다. 진보운동은 익숙한 길을 걸을수록 자족 속에 고립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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