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장관, 그렇게 살지 마시라

정제혁 사회부장

노동절인 지난 1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해 이튿날 숨진 건설노동자 양회동씨 유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 (중략) 먹고살려고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억울하고 창피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자존심’ ‘억울하고 창피하다’는 말이 가시처럼 눈에 박힌다.

정제혁 사회부장

정제혁 사회부장

이들에게 자존심은 무엇인가. 30년 경력 레미콘 노동자 강종식씨(53)는 3년 전 건설노조에 가입했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총파업 결의대회가 열린 지난 16일 경향신문과 만난 강씨는 이전에는 “안전에 대해 누구도,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고 했다. 노조에 가입한 뒤에야 산업안전보건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됐다고 했다. 또 “30년 일하면서 오른 임금은 1만원이 전부인데, 노조에 가입한 3년 동안 1만8000원 올랐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건폭몰이 이후 달라진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건설사 사무소에 자유롭게 출입하며 대화를 나눴었는데, 지금은 잡상인 취급을 한다. 건폭몰이가 대화에 가림막을 친 것 같다. 전에는 현장에서 대우해주고, 노동법에 저촉되는 부분은 못하게 했다. 지금은 불법을 자행하게 만든다. (사측이) 원하는 걸 안 하거나 손해를 끼치면 ‘건폭’이라는 말이 돌아온다.” 이들에게 자존심이란 대화와 교섭의 상대로 존중받는 것, 그로써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이 깡그리 부정되고 시정잡배나 조폭처럼 취급당할 때 “억울하고 창피”하다.

노동자의 자존심.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것. 노동자도 저마다 인간의 존엄과 품위, 감정과 표정을 갖고 있다는 것. 이 당연한 사실의 몰각이 반노동의 시작과 끝이다. 건설노조원들을 자존심, 억울함, 부끄러움과 같은 인간적 감정이라고는 없는 절대악, 투쟁기계로 여기지 않았다면 건설 현장의 제도적 허점이나 관행에는 눈을 감은 채 전세사기 수사보다 많은 현상금(1계급 특진)을 걸고 무분별하게 사냥에 나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사는 보려고 해야 보이고, 사람은 그 안에 있는 인물의 구체적인 표정이 그려질 때 무언가를 제대로 보려고 하는 법이다. 정부가 건설노동자들에게서 인간의 표정을 보았다면, 혹은 상상했다면 지금처럼 통째로 범죄집단 다루듯 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조를 참칭한 이들의 범죄를 처벌하되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개선하려고 노사와 머리를 맞댈 것이다. 노동자의 비인격화야말로 건폭몰이의 배경이자 결과이다. 건폭몰이는 건설 현장을 모른다는 점에서 무지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맹목적이며, 다른 사람의 눈을 가린다는 점에서 악의적이다.

건설노조 간부가 분신을 방조했다는 조선일보 기사는 이런 태도의 극단적인 사례이다. 조선일보는 분신 현장에 있던 노조 간부가 양씨의 분신을 말리지 않았고, 양씨 빈소에 적힌 상주가 건설노조 위원장 한 명이며, 양씨 부고장에 적힌 후원금 계좌의 명의자는 전국건설노조라고 보도했다. 건설노조를 분신을 방조한 집단, 죽음을 투쟁의 불쏘시개이자 수익 수단으로 삼는 패륜 집단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쉽게 읽힌다. 그러나 경찰의 말만 들어보더라도 분신 방조는 사실이 아니다. 양씨 빈소에 적힌 상주도 양씨의 친형과 건설노조 위원장이고, 부고장에 후원금 계좌 명의자를 전국건설노조로 한 것은 유족이 동의한 것이다.

노조를 악마화하는 조선일보의 행태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 사람의 죽음에 관한 일이라는 점, 다른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살해하는 일이라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확인 취재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그 폭력성과 오만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조선일보도 갓 입사한 수습기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기사 쓰라고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노조에 대한 편견과 예단을 잠시 누르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접근했으면 나오지 않을 기사였다. 시급성이 있는 것도 아니니 당사자들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고 쓰건 말건 판단해도 될 일이었다.

괴물이 된다는 게 별것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면 그게 괴물이다. 조선일보 보도에 맞장구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한때의 민주화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내세우면서, 그렇게 정치하면,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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